밤 11시가 넘어서야 비엔나에서 출발한 국제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왔다. 그런 뒤 객차 몇 량을 더 달고 손님들이 승차를 하도록 허락했다. 이 기차도 컴파트먼트 형식의 객차를 달고 다닌다. 우리가 타야할 칸에 타고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 청년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버란다.
우리는 좌석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든 권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출발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한샘군이 오질 않는다. 플랫폼에서 만난 한국인 여학생 둘이 루마니아의 브라쇼프에 간다고 했었는데 그 아이들에게 연락을 하러 간 모양이다.
속이 탔다. 차장은 출발 신호를 알린다. 내려서 플랫폼에 가보니 저쪽 끝에 모습이 보였다. 반가움에 그리고 안타까움에 고함을 질렀다.
"뛰어~~"
주위의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해서 쳐다 본다. 한샘군과 내가 오르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경을 넘는 시간을 모르므로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다. 헝가리쪽 국경역에는 새벽 두시경에 도착했다. 기차가 멈추어 서고 난 뒤 출입국 관리 요원들이 올라와서 출국 스탬프를 찍어 주었다. 그런 뒤 기차는 출발한다. 짐검사는 없었다.
잠시 달린 뒤 드디어 루마니아 국경역에 도착했다. 당연히 이미 국경은 넘은 것이다. 기차가 정차하고 난 뒤 한시간이 지나서야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관리가 등장했다. 눈매가 날카로운데 모두 다 젊은이들이다. 괜히 으시시해진다.
"Where are you from?"
"Where are you going?"
"Tourist?"
질문하는 문장은 단 세개 뿐이었지만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수 없다. 그래도 루마니아 입국에 비자가 필요없으니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비자를 요구하면 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대사관 찾아가야지 수속 밟아야지 돈내어야지......
출입국 절차를 밟은 뒤 다시 한시간이나 더 지나 새벽 4시가 되어서야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젠 마음 푹 놓고 자면 된다. 그래 자자......
아침에 눈을 떠보니 기차는 어느 시골역에 도착해 있었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에 물을 묻히는 정도로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려본다. 루마니아 첫 인상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기차는 엉성하게 손질된 평원을 지나고 있었다. 시골 역사에 게양된 EU깃발이 인상적이다. 이들도 유럽연합 가입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시골 풍경과 흡사한 곳을 달린다. 날씨가 흐려져 있었는데 얼마 안 있어 비가 왔다. 비가 오는 것이다.
젊은 날 공부도 할 겸해서 산사에 들어가서 몇달을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은 그렇게 좋았다. 먼 산 허리부터 비안개가 감싸고 나면 서서히 비가 오는 것이다. 따뜻하게 불을 넣은 방안에서 창호지 바른 문을 열고 밖을 보며 낙수 소리를 듣는게 그렇게 좋았었다.
지금도 좋다. 나그네가 되어 낯선 나라를 달리는데 차창에 빗방울이 빗금을 그으며 흘러가는 이 모습이 어찌 좋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이렇게 떠도는 것이 좋다. 물론 돌아갈 가정이 있고 집이 있고 조국이 있기에 좋은 것임을 안다. 아내가 보고 싶었다. 그리워진다.
야산을 배경으로 붉은 지붕을 머리에 인 집들이 모여 아담한 동네를 만들었다. 루마니아! 얼마나 오고 싶어했던 나라였던가? 천재적인 체조 요정 코마네치를 보고 귀엽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떠 올랐다.
이런 마을은 동화속의 동네 같다. 요정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차는 기적소리도 없이 그냥 마냥 달리기만 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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