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묘지라면(라면이 아니다.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라면 이름도 있는 줄 안다) 음산함을 먼저 생각한다. 무덤이 자르르 모여있는 공동묘지라면 더욱 더 그렇다. 비가 처적처적 내리는 밤, 공동묘지를 걸어간다.
괜히 뒷골이 으스스하게 당겨오고 소름이 좌악좌악 돋는데 저 쪽에 무엇인가 허어어연 것이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 존재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그냥 공중을 가볍게 떠서 주우우우욱 미끄러지듯이 다가온다.
뭐 이런 식으로 낮에 본 공포영화 생각을 하며 침대에서 쓰잘데 없는 공상을 하다가는 자기 혼자 공포감에 사로잡혀서는 비명을 지르고 거품을 물고 숨을 헐떡거리고 심지어는 비명을 지르며 광태(狂態)에 가까운 못짓으로 거실로 쫒아나와서 온 식구들 잠을 다깨우는 사람들도 가끔은 있는 모양이다.
이젠 그런 짓은 그만하기로 하자. 여기 중앙묘지는 묘지 자체가 이미 관광지로 변해 가고 있는 중이다. 유명한 음악가들이 이 곳에 집합하여 주무시고 계시니 손님 끌어모으기에는 효과 만점인 것이다.
저번 글에서 소개한 그 문으로 들어서면 일단 중앙 가로수길을 따라 그냥 바르게 걸어가면서 좌우를 살펴보자. 여기 중앙묘지에는 유명한 음악가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역대 대통령 나으리들도 묻혀 있다고 하니 역사적인 명소 비슷하게 되었다.
일단 32 A구역을 기억해두자. 거기가 바로 음악가 묘지구역이다. 작은 푯말 앞쪽에는 다시 알파벳으로 Musiker 라고 씌여져 있으므로 찾기도 쉽다.
바로 여기다. 찾기도 쉬워라. 이런 것 찾는다고 위성항법추적장치까지 거창하게 들고 오실 필요가 없다.
묘지들이 예쁘다. 귀엽다. 이름답다. 예술적인 감각이 스며나온다. 거기 비하면 우리나라 무덤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귀신소동이나 벌이고 그러지 않는가 말이다.
단 여기는 무덤들을 한 곳에 모아두었고(그렇게 따지면 우리에게도 공동묘지라는게 있다) 개인당 차지하는 비율이 그래도 조금 작다는 것이고 우린 숲을 자르고 산을 깎아서 만들어둔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이 정도 무덤같으면 우리나라에서는 난리가 나지 싶다. 호화무덤이니 어쩌니 해가며 신문에 나고 방송에 나오고 인터넷에 오르는 영광아닌 영광(?)을 누린다. 인터넷 기사같으면 저주성 댓글이 밑에 고구마 줄기마냥 좌르르 달리고....... 난리가 날거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여기에 묻힌 것이 아니란다. 하지만 가운데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무덤(기념비라고 하는게 낫지 싶다)을 중심으로 해서 사진의 왼쪽이 루드비히 반 베토벤, 오른쪽에는 프란츠 슈베르트가 영원한 잠을 주무시고 있다.
일본인 아가씨들은 꽃을 준비해와서 한송이씩 놓고 가던데 우리 쫌생이들은 쫀쫀하시게도 꽃송이 하나 준비 안하고 빈손으로 달랑 와서는 철커덕 소리를 내며 사진 몇방 찍는 것으로 방문기념 행사를 다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 나는 여기서만은 숙연했었다. 위대한 양반들이 이런 곳에 모여 계시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인물의 무덤 하나도 관광지로 개발할 줄 아는 오스트리아인들에게서 나는 오늘도 삶의 지혜를 배운다.
중국인들 같으면 입장료 하나는 어마어마하게 때려두고 돈을 훑어 갈 것이지만 오스트리아인들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여긴 무료입장이다.
하기사 무덤에도 돈 내고 들어갈 사람이 몇이 있으랴마는 돈에 환장하면 이상한 발상도 하는 법이다.
베토벤의 무덤이다. 영화로 보시고 싶은 분들은 <불멸의 연인>이라는 영화를 보시기 바란다. 베토벤의 일생이 그려져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교향곡 9번 합창 부분에서 너무나도 감동적인 부분이 나온다. 미리 이야기를 다해 버리면 재미없을 것이므로 구해서 보시기를 권한다.
오른쪽엔 슈베르트가 묻혀있다. 화가 모딜리아니처럼 뼈저린 가난 속에서 스러져 간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이다. 영화로 보시려면 <슈베르트>라는 영화를 구해 보시기 바란다.
여긴 요한 스트라우스의 무덤이다. 부근에 다 있다. 일부러 한곳에다가 모아 둔 것이다.
이분은 브람스다. "헝가리 무곡"의 분위기가 풍겨 나온다. 나는 그날 죽은자의 무덤에서 살판 났었다. 여기 중앙묘지만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골백번도 더 했다.
이제 여기서부턴 무덤의 분위기를 그냥 전달만 하고자 한다. 분위기만 느껴보시기 바란다.
"시인과 농부", "경기병 서곡"으로 유명한 주페의 무덤이다.
이럴땐 일본 아가씨들이 우리들보다 한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세분의 무덤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한다. 우리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을 뒤에 남겨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내 무덤 묘비명에는 무엇이라고 씌여질까를 생각해보며......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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