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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비인 & 비엔나 4

by 깜쌤 2006. 2. 1.

프랑스를 지배한 부르봉 왕가의 문장이 백합이라면 합스부르크 집안은 독수리를 그 상징으로 썼던 모양이다. 독수리는 오늘날 세계인들로 부터 골고루 미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미국의 문장으로도 쓰이는 날짐승이 아니던가?

 

히틀러의 제3제국도 독수리 문장을 썼다. 로마 제국도 독수리 문장을 썼었다. 그러고 보니 독수리는 예로부터 인기 문장 메뉴 톱 텐 안에는 항상 들었던 것 같다. 글로리테의 한가운데는 독수리 녀석이 한마리 터억 버티고서는 눈을 부라린다. 부라려? 부라려?

 

 

여기 이 궁전을 중심으로 해서 합스부르크 집안의 오스트리아 제국이 중부 유럽을 호령했었다는 말이지? 히틀러가 왜 제3제국의 상징으로 독수리를 선택했는지 이제 조금 짐작이 되는 것 같다.

 

 

로마 시내의 분수가 아기자기하다면 여기 쇤부른 궁전의 분수는 웅장하고 규모가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므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언덕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다보면 쇤부른 궁전이 저만큼 뒤에서 환송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연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더 큰 것 같다.

 

 

이탈리아인들 같으면 더 아기자기하게 분수를 꾸몄으리라. 분수를 모르는 자들이 분수를 크게만 만들다가 결국은 푼수가 되어 버리는 모양이다. 그런 사람들이 분수 계산은 잘 해낼까? 

 

 

갈지자 모양으로 언덕을 휘감은 길을 걸어 올라갔다. 많은 사람들이 글로리테를 향하여 걸어오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멈출 수는 없다. 가자!! 아자 아자!!"

 

"빠알리 가고파라 가고파

 소옥히 보고파라 보고파

 하앙상 있고파라 있고파"

 

시인 이은상씨가 친일파였으니 이런 노래 부르는 어리버리한 누구도 친일파라고 매도하지는 말기 바란다.  

  

 

 

언덕길 좌우로는 이주 울창한 숲이 자리하고 있다. 나중에 들어가보고 안 사실이지만 대낮에도 어두컴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짙은 숲이었다.

 

 

 

이제 서서히 주위 경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거의 다 올라와서 보면 그리스 양식의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이 기념건물은 프러시아의 침입을 물리친 기념으로 세운 것이라고도 하던데......

 

 

뒤돌아서서 아래를 보면 숲으로 둘러싸인 쇤부른 궁전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즈막한 집들이 가득한 부드러운 언덕의 곡선이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오른쪽으로 시가지가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성당의 첨탑들이 여기저기에서 솟아 올라 신을 향한 인간들의 간절한 염원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이런 정도의 숲을 가꾸는데는 굉장한 돈과 시간이 들었으리라. 숲을 산책하던 귀족들과 예술가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시간이 넉넉하다면 비인 숲을 한번 가봐야하지만 이번 여정상으로는 영 글러버린 일 같다.

 

 

극도의 인공미가 첨가된 궁전의 위용도 위용이지만 건물 자태가 주는  단정함도 무시할 수 없지 싶다.

 

 

서양에 베르사이유 궁전과 쇤부른 궁전이 존재한다면 동양에는 타지마할과 자금성이 존재하리라. 자금성의 규모나 건물배치는 여기 쇤부른 궁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거긴 나무 한그루 없는 황량한 곳이기도 하다.

 

암살을 두려워한 황제들의 안전을 위하여 처음부터 나무를 심지 않았다는 말이 있던데 나무가 없다고 해서 자객들이 스며들지 못한다는 그런 논리가 과연 정당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글로리테 바로 앞 연못엔 원앙인지 오리인지 구별이 잘 안되는 녀석들이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아내가 생각났다. 어찌보면 불쌍하기만 아내이다. 어떤 사람의 묘비에 이런 말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여기 발명가이며 음악가이고 미술가이며 시인이며 극작가이고 소설가였고 여행가였던 화려한 삶을 산 누구누구가 잠들다."

 

그 옆에는 이런 묘비가 하나 세워져 있는 무덤도 있었다고 한다.

 

"그의 아내도 여기 잠들다."

 

남편이 누린 화려한 삶(어찌보면 무위도식한 인간의 대명사이기도 한 남편) 뒤에는 비참한 인생을 살다가 가버린 그의 아내의 인생이 누워 있었으리라.

 

"아내여! 정말 미안하오."

 

 

사람 겁을 안내는 것으로 보아 오리들 같았다.

 

 

라틴어를 모르니 정확한 의미가 이해 안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라는 말은 읽을 수 있겠다.

 

 

글로리테 안은 카페로 쓰이는 것 같았다. 지붕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결국 못찾고는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이젠 내려가야할까 보다.

 

 

나는 일부러 숲길을 택했다. 문득 베토벤이 산책하던 숲 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 길이 선생이 산책하던 그 길이 아닐지라도 좋소.

길은 지그재그로 아래로 뻗고 있소.

아니 갈지자로 굽어 있소.

정지상 선생의 오리 모양으로도 굽어 있소.

 

한명 뿐인 한국의 여행객이 무섭다고 그러오.

오지랍 넓은 오지리(=오스트리아)의 여행객이 무섭다고 그러오.

미친 미국 여행객도 무섭다고 그러오.

불쌍한 불란서 여행객도 무섭다고 그러오.

독한 독일 여행객도 무섭다고 그러오.

 

다 무섭다고 그러오."

 

 

대낮에도 어두컴컴하다는 느낌이 드는 길을 혼자서 되지도 아니하는 이상한 시를 씨부렁거리며(이런 말을 쓰면 천박한 인간이라고 생각해서 돌 날아오지 않을까 싶다) 누구누구는 꺼꾸질렁 어리버리한 자세로 걸어서 내려갔던 것이다.

 

(글로리테의 사진은 다음에 몇장 더 소개할 예정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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