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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아름다운 해안 아말피로 가자!! 8 - 폼페이

by 깜쌤 2005. 11. 15.

목욕탕을 나온 우리들은 Faun의 집을 찾아갔다. 폼페이 유적지 중에서는 가장 큰 집터라고 하는데 그냥 보아서는 짐작이 안된다.

 

 

마당 한가운데 청동상이 나왔다는데 그게 그리 유명하단다. 나는 폼페이에 관한 지식이 짧은 사람이므로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그래도 내 얼굴 하나만은 넣어서 찍겠다고 청동상 앞에가서 사진을 찍었다. 내가 봐도 이젠 참 많이 늙었다. 그래도 행복한 것은 남은 한번도 오기 어렵다는 여길 두번씩이나 왔으니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싶기 때문이다.  

 

 

벽틈에 낀 이 토관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빗물을 모으는 관이었을까? 짧은 지식을 가지고 이런 것을 함부로 유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폼페이에 수도시설이 되어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경제력에 여유가 있었던 부자 집에는 납관과 나무관으로 된 수도관이 연결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이렇게 공공 수도장에서 물을 떠갔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곳에서 물을 떠가는 것은 무료였던 모양이다. 오늘날에도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광장에 가면 수도 꼭지의 물이 그냥 흐르게 되어 있다. 그런 것은 샘물일 가능성이 높다. 하여튼 이천년 전에 이미 이런 시설을 해두고 살았던 로마인들의 기술력 하나는 알아주어야 한다.

    

 

이런 수도 시설이 대로변 곳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여긴 빵가게였던 모양이다. 빵 굽는 틀이었다고 설명하던데...... 포도주 가게가 있고 빵가게가 있고..... 있을 것은 다 있고 갖출 것은 다 갖추어 두고 살았던 모양이다. 우린 그 시대에 삼국이 이제 발전의 초석을 깔고 있었다고 하지 않던가?

 

 

수도 시설이다. 샘물을 끌어와서 관을 통해 여기까지 흘러온 물을 보통 서민들은 통을 들고와서 물을 퍼갔던 모양이다. 부자들은 집안까지 수도관을 깔았고...... 당연히 그럴 경우에는 수도요금을 내었다고 한다. 

 

 

 이젠 일반 가정집들이 들어선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도로 폭이 좁아지는데다가 조금 후지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도시에는 공공시설물들과 개인 시설물들이 들어선 구역이 잘 구별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길 양쪽은 조금 깊게 해서 빗물이 쉽게 잘 빠지도록 해두었다. 반드시 인도와 차도를 구별해 두었는데 이는 혹시 교통사고의 발생을 방지하고 물자 수송과 공급의 원활화를 위해서 그렇게 해 둔 것이었을까?

 

 

예전에 왔을 땐 가정 집 담밑에 붙어있는 수도관을 본 기억이 나지만 이건 무슨 용도로 쓰였는지 이해가 잘 안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짐작할 수 없는 일이라 궁금증을 가슴에 묻고 넘어가고 말았다.

 

 

다시 큰 길로 나선 우리들은 이제  원형 극장으로 향했다. 날이 엄청 뜨거웠지만 나는 너무 재미 있어서 시간 가는줄을 몰랐다.

 

 

극장 옆 공터까지 온 우리들은 여기에서 준비해 온 빵으로 점심을 먹었다. 목이 마른 것은 당연지사이다. 목이 마르니까 목이 메이는 것이지만 정말로 내가 목이 메였던 이유는 나는 그날 빵을 먹은 것이 아니라 역사를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깜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