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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아름다운 해안 아말피로 가자!! 5 - 폼페이

by 깜쌤 2005. 11. 8.

폼페이 이야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을 정도이므로 이쯤해서 어설프게나마 찍어온 사진으로 대체하기로 하자. 사실 나도 많이 아는 백성도 아니므로 밑천이 떨어질때도 되었기에 이렇게라도 피해 나가야겠다.

 

나폴리 기차역에서 사설 철도를 이용하여 폼페이 기차역에 도착했다. 후덥지근한 기차에서 내리니 숨을 좀 고를 수 있었다.

 

 

폼페이 역에서 유적지 입구까지 가는 길은 너무 짧다. 바로 옆이나 다름 없어서 조금만 걸으면 된다. 거기다가 안내 표지판까지 뚜렷하므로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낙서투성이 기차가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 누구 글에 보니까 스프레이로 저렇게 그리는 그림도 훌륭한 예술이라고 하더라만 어리석은 내 생각으로는 공공시설물에는 제발 좀 손을 안댔으면 좋겠다. 예술이라는 이름만 갖다대면 만사가 통한다는 그런 사고방식이 진정한 열린 사고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보기가 좀 그랬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과일 가게는 변함없이 번창하고 있었다. 오렌지가 주렁주렁 처마밑에 매달려 쪼그라들고 있었는데 간판에는 일본 글자가 떡하니 자릴 잡고 앉아서 은근히 밸을 꼬이게 만들었다.

 

 

도대체 뭐가 영어이고 이탈리아어인지 구별이 안될때가 있다. 눈치로 보건데 발음을 해보고 나서 밑에 받침이 없는 말이 이탈리아어 같다.

 

 

 

유적지에 입장하기 전에 물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안 그러면 사막도 아닌데 갈증으로 목말라 죽는 수가 생길 것이다.

 

 

 

이제 입장해서 처음 들어가는 길 부근에 서 있다. 일단 심호흡을 해서 이천년의 세월을 버텨낸 유적지와 대면할 준비를 해야한다. 뭐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워낙 유명한 장소가 아니던가 말이다. 

 

 

뜨거움에 지친 관광객들은 그늘만 보이면 들어가서 쉬고 본다. 괜히 한가지라도 더 보겠다고 발발이처럼 돌아다니다 보면 일사병으로 맛이 가는 수가 있다.

 

 

아직도 줄기차게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기에 군데군데 출입을 금지하는 시설물을 설치해 두었다.  저 멀리 베수비오 화산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폼페이 중심 도로는 넓다. 쭈욱 뻗은 도로가 도시 한가운데를 시원스레 관통한다. 도로는 모두 넓적한 돌로 포장을 해 두었다. 로마인들에게 학대당한 노예들이 이런 작업을 했을까? 아니면 처음 도시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에트루리아 인들이 만든 것일까?

 

 

이쪽 인도에서 저쪽 인도로 건너갈 수 있도록 징검다리 비슷하게 만들어 두었다. 바닥을 포장한 돌들의 생김새가 특이하다.  

 

 

중앙 광장에 들어왔다. 사방이 신전과 상업지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예전에는 대단한 화려함을 자랑했으리라. 기둥과 회랑들이 세련된 도회지의 분위기를 펼쳤을 것이지만 지금은 폐허 뿐이다.

 

 

연설대가 보이는가하면 주랑들이 보인다. 저 뒤에는 고요한 침묵을 지키는 베수비오 화산이 자릴 잡았다. 저 녀석이 또 언제 분노의 함성을 지를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런 도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대리석들이 필요했을까? 운반은 어떻게 해 왔으며 어떤 연장으로 조각하고 다듬고 깎아낸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기만 했다.

 

 

 

이런 화려한 조각 솜씨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돌을 떡 주무르듯한다는 표현이 이제 이해가 된다.

 

 

 

여기 이 광장에서도 칼리굴라 황제의 이야기가 나왔다. 인간 망나니였지만 명예욕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드디어 폼페이에서 출토된 토기들이 가득한 전시장으로 들어왔다. 온갖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그릇들이 자릴 잡았다. 뾰족한 항아리들엔 아마도 포도주를 담았으리라.

 

깜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