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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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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아름다운 해안 아말피로 가자!! 6 - 폼페이

by 깜쌤 2005. 11. 10.

출토품을 모아놓은 이 창고 속 한가운데 누워있는 저 남자는 누구인가? 처음에는 시신인줄로만 알았다. 한 십몇년 전이다. 할머니 묘소가 중앙고속도로에 편입되었다고 해서 이장을 했하게 되었다. 한창 젊은 청춘에 홀로 되셔서 아들 형제를 키우시느라고 등골이 빠질 정도로 고생만 하셨던 할머니는 내가 본 가장 가까운 피붙이셨다. 나는 고모, 이모,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숙모, 삼촌, 사촌을 모르고 자랐다.

 

 키가 자그만하고 착하기만 하셨던 우리 할머니이셨는데 무덤을 파헤치고 나니 유골이 놓여져 있던 자리엔 자그마한 허벅지 뼈만 눈에 불을 켜고 보면 보일락말락하게 조금 남아있었고  머리가 놓여 있었던 부분은 동그랗게 구멍이 나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분이 세상에 남겨놓으신 것은 고작 얼마 안되는 머리카락 몇 올과 희미한 뼈마디의 흔적 뿐이셨다. 돌아가신지 한 30년만에 모든 것이 다 헛것으로 남았다.

 

 여긴 폼페이이고 세월은 거의 2000년이나 흘렀다. 그러니 시신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리가 없다. 뜨거운 화산재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와중에 묻힌 시신이 온전하게 보전될 리가 없는것이다.

 

퇴적된 화산재 속에서 몸을 이루었던 성분은 다 사라져 버리고 인체의 흔적이 남아 텅 빈 자국만 남은 곳에 석고를 부어 떠낸 모습이라고 한다. 사실이 어떤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그렇게 알려져 있으므로 소개하는 것 뿐이다.

 

     

이 남자는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극도의 공포와 고통을 이겨내느라 무진 고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쉽게 체념을 하고 죽음을 맞이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앉은 자세로 보아 그는 엄청난 고통을 겪은 것으로 짐작된다. 이 경우는 개인의 종말이 그가 사는 세상의 종말과 함께한 지극히 드문 예일지도 모른다.

 

 

이건 어쩌면 시신일지도 모르겠다. 석고로 떠낸 모형인지도 모르지만 넣어둔 모습으로 보아 진짜라고 믿고 싶다. 이 분은 살기 위해 극도로 몸부린 친 것 같다. 절망속에서 얼마나 몸부린 친 것인지는 모르지만 실제 상황이었으니 암흑 속에 갇혔다는 공포심 그 자체가 그에게는 더 무서웠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비극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초고층 건물에 대한 테러로, 지진으로, 츠나미로, 초대형 화재로 죽어갔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비극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잘 죽는 것이 큰 복이란 말이 실감났다.

  

 

비극을 불러 일으켰던 화산이 지금은 얌전하게 버티고 앉았지만 언제 다시 분노의 고함을 질러댈까 싶어 겁이 났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 화산이 다시 폭발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싶어 괜히 조바심이 났다.

 

  

공공 수도로 쓰였던 것으로 알려진 시설물 가에는 그늘을 찾아온 개 한마리가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녀석 하고는..... 개팔자가 상팔자라더니 꼭 그꼴이다.

 

 

햇살은 따갑다 못해 뜨거웠지만 관광객들은 부지런히 역사의 흔적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인파 속에서 나도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고......

 

 

2000년전의 도시가 왜 이렇게도 규모가 크고 웅장한지 모르겠다. 난 어릴적엔 우리 역사와 문화가 최고인줄로만 알고 살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어머니가 최고로 잘 나신 분들이고 천하장사인줄로만 알고 있다가 살면서 그 환영이 하나씩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나는 어른이 되어 돌아다니면서 점점 실상을 깨달아 갔다. 

 

 우리 역사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있는 모습  그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 뿐이니 문장 하나로 오해해서 함부로 사람을 이러니저러니 판단하지 말기 바란다.

 

 

예나지금이나 부자들의 삶은 살맛나는 것이리라. 당시의 부호가 거처로 삼은 곳으로 알려진 집에 들어섰다. 복원한 정원이 넓직하게 잘 가꾸어져 있다. 안마당이 제법 규모가 있었다.

 

 

바닥을 장식한 정교하고 치밀한 모자이크 장식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이게 정말 이천년전의 유적이란 것인지 의심스럽다.  

 

 

드디어 우리들은 대중탕 속에 들어왔다. 그 곳엔 사우나 시설을 갖춘 것은 물론이고 열탕과 냉탕까지 완비하여 양쪽을 왔다갔다하며 즐겼다니 그런 로마인들의 일상생활 모습엔 그만 질리고 만다. 로마인들에게 목욕장은 생활의 즐거움이자 문화 시설의 축약판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보면 볼수록 그들의 기술력과 상상력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