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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 세계문화유산 "도강언" - (5)

by 깜쌤 2005. 10. 29.


 일반적으로 도강언은 이빙 부자(父子)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가 정확하게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심지어는 그가  촉 나라 사람인지 진나라 사람인지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한족 사람이 아니고 이민족인 강족(羌族)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고 하니 헷갈리기만 할 뿐이다.


 이빙 부자가 40여 년에 걸쳐 도강언을 완성하였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말 이빙에게 아들이 있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옥루관 공원 속에는 이빙 부자를 기리어 이왕묘(二王廟)라는 사당도 세워 두었으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심스럽다. 하여튼 그들 부자는 현지인들에게 절대적인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민강 위로 걸쳐놓은 출렁다리. 이 다리를 건너 강중간에 있는 도강언시설물을 직접 보러 갔다>

 

 이빙이 실존인물이라는 증거로는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史記) 하거서(河渠書) 편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실 사마천의 사기는 내가 젊은 날 몇 번이고 탐독한 책이었지만 열전(列傳)편을 중심으로 읽어본데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기에 다른 자료를 인용한 것이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데 이 부분은 이성규님이 편역한 사기에 나오는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촉에서는 촉의 태수 이빙이 이퇴(離堆)를 개착하여 말수(沫水)의 수재(水災)를 제거하고 성도 지역을 관통하는 2개의 강을 파서 만들었다. 이 수로들은 모두 배가 다닐 수 있고, 여유가 있으면 관개에도 이용되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 혜택을 받았다.

 

 수로가 지나는 지방은 도처에서 그 물을 끌어 관개용의 수로를 만드는 일이 더욱 늘어나 그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도강언 시설물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옥루관 부근 전망대에서 나는 관리와 정치인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권력을 이용하여 자기 재물을 탐하고 부정과 부패를 일삼으며 입으로만 진리와 정의를 부르짖는 교만한 정치인과 관리들은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헛소리를 그만두고 제발 여기 도강언에도 한번 와서 본 뒤 진정한 지도자란 무엇을 말하는지를 느껴보라고 외치고 싶었다.

 

                            <이빙 부자를 모신 사당 이왕묘>

 


 아울러 도강언은 나 자신에 대한 진정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만든 귀중한 장소이기도 했다. 남을 탓할 필요 없이 나 또한 말만 앞세우고 자기 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았다. 나 자신도 한없이 모자라고 부족하기만 한 쓸모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되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옥루관을 지나 강변을 따라가면 이왕묘가 나타나고 거기서 민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면 강 중간의 작은 섬 모양처럼 생긴 장소로 나아갈 수 있다.

 

출렁거리는 다리에 서서 밑을 보면 구채구와 황룡을 가기 위해 꼭 거쳐가야 하는 천주사진 부근에서 시작되어 천리 길을 쉼 없이 흘러온 민강 물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