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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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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 제갈공명의 사망지 "오장원"가기 - (2)

by 깜쌤 2005. 10. 13.
보계(寶鷄 바오지)만 해도 큰 도시이다. 작은 도시라니까 작은 읍 정도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중국에서 큰 도시라면 기본적으로 인구 500만이 넘어가고 작은 도시라고 해도 보통은 수십만이나 백만 단위로 논다.

 

 터미널내의 게시판을 한참 쳐다보고 있는데 호객꾼들이 와서 말을 걸어왔다. 말이 안 통하니 필담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자가용 영업을 하는 차량도 있는 것 같아 모두 거절하고 정식 영업허가를 받은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그게 고생의 시작일 줄이야.....


 일단 9시발 보계행 버스를 탔다. 봉고보다는 조금 큰 중형버스였다. 시내를 질러 나가기에 쉽게 갈 줄로 알았지만 어느 시점에 가서는 길이 막혀 돌아나가기도 한다. 2000년에 서안을 왔을 때 조선족 교회에 들른 기억이 났다. 길가의 풍경이나 건물구조가 너무 흡사하여 그때 생각이 나는 것이다.


 길거리도 틀림없는 그 거리이고 허름한 아파트 건물도 틀림없다. 중국에서는 선교가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기에 선교사들은 가명으로 활동하고 심지어는 직업도 위장한다. 이선생으로 불린 선교사는 끝내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아니하셨다. 안선생으로 불러달라고 하신 그분도 끝까지 자기 이름을 숨기셨다.


 특히 안선생이라는 분은 중국인들과 조선족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셨는데 중국어가 워낙 능통하여 설교하는 솜씨와 성경지식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시는 분 같았다.

 

조선족 교회는 다가구 주택으로 만든 일반 가정집을 개조하여 만든 것이었기에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방 한 칸에 부엌 한 칸 짜리 교회였는데 사람 십 여명이 들어앉으니 만원이 되었다.


 그랬던 기억이 눈앞에 아슴아슴한데 그게 벌써 5년 전의 일이 되었다. 그분들이 모두 어떻게 사시는지 한없이 궁금하지만 소식을 알 길이 없으니 하 답답한 노릇이다. 한참 그런 감회에 젖어 버스를 타고 가는데 어느 변두리 한 모퉁이에서 중국 청년 대여섯 명이 우루루 올라타는 것이었다.

 

 영화배우 뺨치게 잘 생긴 청년을 포함하여 한결같이 잘 생긴 녀석들인데 어딘지 모르게 악기가 가득해 보였다. 처음엔 무슨 약장수 그룹인가 싶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버스 안에서 떠들어대므로 처음부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왜 그런지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져 옴을 금할 수 없었다.


 서안에서 미현까지는 120Km나 되는 거리이다. 요금은 15원이다. 15인승 중형버스는 서안시내를 이리저리 헤매다가 시가지를 벗어났다. 9시 50분에 출발했으니 사실 조금 늦은 편이다.

 

그런데 시내에서 차가 막혀 시간을 빼앗겼으니 몇 시경에 도착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처지다. 미현까지는 버스가 거의 기어가는 수준이다. 이래가지고는 도저히 안되겠다. 속이 타기 시작했다. 그런 조바심을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전말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