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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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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 제갈공명의 사망지 "오장원"가기 - (1)

by 깜쌤 2005. 10. 12.

오장원(五丈原 우장위안)을 가고 싶었다. 그건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나는 동네 구석에 있던 고물 이발소에 자주 갔다. 거기가면 한국일보로 기억되던 신문 쪼가리를 구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월탄 박종화 선생이 글을 쓰시고 이승만 화백이 삽화를 그린 것으로 기억되는 삼국지를 어쩌다가 한번씩 주워 읽을 수 있는 기회였으므로 거기에서 나는 동탁, 여포, 유비, 제갈량 등 삼국지의 인물들을 알게 되었다.


 그 영향이었던지 나중에 자라서 월탄 선생의 작품이라면 어지간 것은 거의 다 읽어보았다. "자고 가는 저 구름아", "금삼의 피", 임진왜란" 등 지금은 기억 속에 가물가물 하지만 그런 역사 소설들을 읽어본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른다.


 삼국지가 나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으며 중국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나는 삼국지와 수호지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었다.


 삼국지가 얼마나 좋았던지 나중에는 일본 작가 요시가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삼국지를 구해 보기도 하고 만화가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는 너덜해질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이문열씨의 삼국지도 한번은 읽어봐야 하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가슴에 와 닿지를 않는다.


 제갈공명이 사마중달과 다투다가 병들어 죽었다는 오장원만은 꼭 한번 가보고 싶었기에 그 곳이 어디 있는가 싶어 한없이 궁금해하며 자랐다.

 

그러다가 드디어 오장원이 서안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번 기회에는 꼭 한번 가보고 말리라 다짐하여 서안까지 흘러 들어 온 처지가 아닌가?


 

 

<오장원의 제갈량 사당을 오르는 길 - 저 계단위에 보이는 기와집이 사당이고 그 뒤 작은 산이 오장원이다>

 

 

"형님, 우리 청년들하고 함께 진시황릉, 병마용, 화청지를 다녀오실 수 있겠습니까?"
 "해보지뭐,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우리도 이제 중국에 온지 20일이나 되는데....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그렇게 하시면 저는 혼자 오장원에 가려구요."
 "오케이"


 일이 그렇게 쉽게 풀렸다. 일단 론리 플래닛을 꺼내어 병마용 가는 길과 요금 방법 등을 자세히 일러두고 용기를 북돋워 드렸다. 출발하는 날 아침에 빈관 로비에서 어제 잠시 인사를 나누었던 한국인 여행자들을 다시 만났다.

 

몇 가족이 어울려 여행을 다니는 그분들도 오늘 병마용을 간단다. 리더인 듯한 분은 영어를 조금 하시는 듯 했다. 로비에서 식구들을 점검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에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뭘로 가십니까?"
 "우린 봉고 차를 맞추었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리고 나서 가만히 보니까 이분이 중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봉고 차 대절 요금으로 거금 1400원을 주는 것이 아닌가? 1원이 우리 돈으로 약 150원 정도이니까 차량대절비가 자그마치 16만원인 셈이다.

 

그 정도의 돈은 중국인 한달 봉급을 넘어선다. 버스로 다녀오면 한 사람 당 10원(한화 1500원)이면 해결될 것인데..... 그들이 잘했느니 못했느니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게 여행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사실 말이지 100원짜리 거금을 손에 수북히 쥐고 흥정을 하는 모습은 그리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특유의 허세가 있다. 돈이나 옷, 집 등 내가 가진 우월함을 남에게 뻐기고 자랑하고 싶은 그 무엇 말이다. 그게 여행 중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나도 알게 모르게 그랬으리라.


 1400원을 주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무엇이 틀렸는지 중국인에게 그 돈을 황급히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중국인은 돌려주지 않으려 하고..... 더 이상 보기가 민망스러워 얼굴을 돌리려다가 같은 동포의 일이어서 보고 있었는데 일단은 타협을 보는 것 같았다.


 형님과 청년들을 길 건너 버스 터미널로 안내해 준 뒤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한 뒤 헤어졌다. 이젠 나 혼자이다. 지도상으로 오장원이 위치한 "미현"이라는 작은 도시는 "보계"가는 길목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