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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로마 헤매기 15 - 치르코 마시모 전차 경기장

by 깜쌤 2005. 10. 11.

                                <콜로세움에서 치르코 마시모로 가는 도로>

 

고물 장수 아저씨나 연탄배달 하시는 분들이 끌고 다니셨던  것으로 리어카라는 것이 있었다. 잘 기억이 안나는 분들은  인간 달구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요즘 양반들은 달구지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그것 참 이야기가 갈수록 어렵게 된다.

 

그러니까 리어카라는 것이 으음.......,  쉽게 말하면 이렇다. 겨울철의 별미인 붕어빵을 구워파는 붕어빵 장수 아저씨들이 붕어빵틀을 얹어놓는 탈것이 바로 리어카이고 포장마차의 이동수단이 바로 리어카이다. 괜히 어렵게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조금 보기 힘들어졌지만 예전에 시골에는 집집마다 리어카 한대 정도씩은 있었다. 나도 청년시절 시골에서 농사를 2년 지을때 엄청나게 많이 끌어 본 물건이다. 리어카 뒷부분의 칸막이를 제거하고 바퀴축에는 엄청나게 예리하게 갈아 둔 낫을 달아보자. 날카로운 낫 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무서워진다.

 

 

                                                <치르코 마시모의 위용>

 

 이번에는 머리를 써서 바퀴는 회전하도록 해두고 바퀴축에 단 낫은 회전하지 않게 한다. 낫 대신에 긴 칼을 달아도 된다. 리어카 짐싣는 부분에는 사람이 타고 리어카 앞 부분에는 거대한 체구의 말을 두마리나 네마리 매어 무서운 속도로 달리게 하면 그게 바로 고대 사회의 탱크로 알려진 전차가 된다.

 

 워낙 무서운 공포의 무기이었으므로 고대의 오리엔트 국가들은 보유하고 있는 전차의 수자를 가지고 국력을 나타내는 기준으로 삼았을 정도였다. 영화 벤허를 보면 장장 15분간이나 계속되는 전차경주 장면이 펼쳐진다.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시대의 영화이므로 오늘날 다시 보아도 전차경주 장면은 아찔하기만 하고 어떻게 촬영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오른쪽 벽돌 유적이 남아있는 쪽이 팔라티노 언덕이다. 그 너머가 바로 포로 로마노이다>

 

 전차 경주라는 그런 무시무시한 스포츠는 실제로 펼쳐졌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이 상상해낸 상상속의 스포츠였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전차경주는 실제로 행해졌던 고대 사회의 스포츠이다. 터키 이스탄불의 히포드롬이나 로마 팔라티노 언덕 남쪽에 남아있는 치르코 마시모는 전차경주가 벌어졌던 유적지로 유명하다. 

 

포로 로마노를 나온 우리들은 콜로세움을 지나 비아 디 산 그레고리오 도로를 따라 치르코 마시모 전차경주장으로 걸어갔다. 이 경기장은 로마가 왕정으로 번성하던 건국 초기에 로마인들이 팔라티노 언덕과 아벤티노 언덕 사이의 습지에 고인 물을 빼내고 만들었다고 한다. 한때는 길이만 해도 600미터에다가 폭이 200미터 정도 되었다니 그 규모만으로도 입이 떡 벌어지는 곳이다.

 

 

<사진의 오른쪽 언덕이 아벤티노 언덕이고.... 아벤티노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의 거대한 습지의 물을 빼내고 이런 경기장을 만들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조금씩 기울어져 가는 저녁 햇살을 맞받으며 우리가 찾아갔을 때엔 텅 빈 경기장에 나그네 몇 명만이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팔라티노 언덕 쪽으로는 예전에 귀빈석이 있었던 모양인데 지금은 거대한 폐허만이 남아 세월을 감싸안고 뜨거운 뙤약볕아래 하염없이 졸고 있었다.

 

도대체 로마인들은 뭘 믿고 이런 거대한 경기장을 만들었던 것일까? 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치르코 마시모에는 최대 30만명 정도가 입장할 수 있었고 적어도 15만 명은 충분히 입장이 가능했었다니 할말을 잃고 만다.

 

 

 예전의 그 뜨거웠던 함성은 간 곳이 없고 지금은 야생화 꽃밭 비슷하게 변해버려 경기장 주위를 둘러싼 도로를 자전거를 탄 로마 시민들이 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심드렁해진 나는 코레아누스 날라리우스 양사언우스가 되어 엉터리 시조를 한수 외우는 것으로 기념을 삼고 말았던 것이다.

 

"일천년 도읍지를 두 발로 걸어드니

 경기장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그날 그 함성이 꿈이런가 하노라"    

 

마지막으로 한마디, 영어의 서커스는 치르쿠스라는 라틴어에서 왔다고 한다. 이탈리아어로 치르코 마시모(Circo Massimo), 라틴어로는 치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

 

(써놓고 다시 봐도 오늘 글은 분위기가 좀 이상하게 흐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