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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로마 헤매기 13 - 포로 로마노 C

by 깜쌤 2005. 10. 6.

 

 세베루스 개선문을 내려와서 포로 로마노를 보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붉은 빛이 나는 웅장한 벽돌 건물을 볼 수 있다. 사각형으로 된 입구 문이 높고 커서 웅장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데 누구나 쉽게 들어가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이 건물이 바로 쿠리아, 즉 로마 원로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말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VENI, VIDI, VICI"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부르투스! 너까지도....."

"주사위는 던져졌다"


당연히 위의 말들은 모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쏟아낸 명언들이다. 명언들의 유래를  여기서 다 이야기 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그냥 넘어가야 한다. 이런 말들을 남긴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 3월 15일 아침에 원로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나섰다가 살해당했다.

 

 많은 여행 가이드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카이사르가 바로 이 건물 안에서 죽었다는 것은 확실히 잘못된 견해일 수 있다.

 

 

 

< 바로 위의 사진은 포로 로마노에서 카피톨리노 언덕쪽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 세베루스의 개선문 아치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서서 포로 로마노쪽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의 오른쪽 모퉁이 흰색 건물이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다.

 

 관광객들이 몰려 서있는 그쪽이 바로 카피톨리노 언덕이고 그 너머에 폼페이우스 극장과 폼페이우스 대회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정확한 역사의 기록은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 극장 동쪽 대회랑에서 죽은 것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당시 폼페이우스 대회랑은 카피톨리노 언덕 너머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그 대회랑은 길이만 해도 자그마치 180미터에 폭이 135미터가 되었다고 하니 상상을 넘어서는 거대한 것이기도 하다.

 

 회랑 끝부분에 폼페이우스 극장이 있었는데 카이사르는 극장 쪽의 회랑 끝부분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3월 15일 운명의 그 날 아침, 원로원 회의는 아침 10시경에 시작될 예정으로 있었다고 한다. 카이사르가 통치하면서 원로원 의원수가 900여명으로 증원이 되었으므로 그 시각 쯤엔 회랑 주위로 수많은 원로원 의원들이 모여들고 있었을 것이다.  

 

 로마인들의 전통 의상인 토가 속에 칼을 숨긴 암살자 일당 14명이 카이사르를 둘러싸고는 광란의 칼부림을 시작하였는데 이날 그는 모두 23군데에 단검 자상을 입었다고 한다. 사흘 뒤인 18일 파르티아 원정길에 나서기로 예정되어 있던  카이사르는 결국 토가로 자기 몸을 감싸며 쓰러졌고 이내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카이사르의 양아들이었던 부르투스까지 가담한 이 암살사건은 너무나 유명하여 수없이 많은 이야기꺼리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잘 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는 상당 부분이 잘못된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하니 사실을 알고보면 좀 허탈하기까지 하다.


 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에 나는 카이사르의 암살을 그린 셰익스피어의 희곡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큰 감명을 받았는지 모른다. 한동안 나는 시저가 이 원로원 건물 안에서 살해당한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다. 그랬었기에 나는 이 건물만은 찬찬히 살펴보고 싶었다. 

 

 

 

 조금 떨어져서 찬찬히 살펴보면 원로원 건물은 붉은 빛나는 견고한 벽돌로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원로원 건물 뒤로 희게 드러나 있는 건물이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다. 그 부근의 언덕은 캄피돌리오 언덕이고...... 


공화정 로마와 제정 로마의 원로원 건물이 우리들 눈앞에 펼쳐져 있다. 어쩌면 예

전에는 이 건물의 입구가 아치였는지도 모른다. 건물 정면에 뚜렸한 아치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흔적을 밟으며 안으로 들어가보자.

 

 


 입구를 들어서면 토가를 몸에 걸친 원로원 의원들이 아름답게 장식된 대리석 바닥의 모자이크를 밟으며 우리를 환영해 주는 것 같다. 그래! 여기에서 원로원 의원들이 세계의 절반에 대한 경영을 논하고 법을 의논하고 토론하며, 아주 드물게는 황제를 선출하기도 했다는 말이지?


이 사진은 입구에 서서 오른쪽을 본 모습이다. 정면은  아래 사진처럼 되어 있다.

 

 

 

 보는 김에 왼쪽까지 살펴보자. 이제는 이런 조각품 몇개만이 덩그렇게 남아있는 원로원 내부이지만 여기를 가득 메웠던 영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이 다 죽고 없는 줄은 알지만 여기가 바로 로마 역사의 현장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드디어 나는 숙연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역사가 움직여 가는가보다. 물론 이 건물은 최근에 일부만 복원된 것이어서 당초의 속 모습이 어땠는지 정확하게 잘 살펴볼 수 없지만 역사의 현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어설프나마 영웅 호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원로원 건물을 빠져 나왔다. 말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