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낙원 찾아 헤매기 - (9) : 티벳 파티

by 깜쌤 2005. 10. 8.

노래는 박력이 있고 힘이 넘치는 것이 있는가하면 애조를 띈 애달픈 곡도 있었다. 남자 가수가 두 사람 정도 되고 여자 아가씨들도 서너 명 있어서 그런 대로 다양한 무대를 꾸밀 수 있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서 흥이 겨워왔지만 나는 자꾸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면서 떨려오기 시작했다.


 오한이 들면 나는 거의 반죽음 상태에 이른다는 것을 알므로 은근히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술이 잔뜩 취한 한족 관광객 몇몇이 분위기를 망쳐나가기 시작했다.

 

 띵띵하게 살이 오른 거구의 중년 남자들이 공연장 한가운데 나와서는 마이크를 들더니 돼지 멱따는 소리를 해가며 노래를 부르는데 그런 소음이 따로 없었다.


 같이 온 사람들이 말릴 법도 하련만 오히려 박수를 치고 난리니 기분을 다 잡치고 만다. 그래도 일단은 조금만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제풀에 나가떨어질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술 취한 인간들의 만용은 아무도 못 말리는 법이다.

 

 그들 때문에 수유차 맛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참파의 구수한 맛조차도 놓쳐버리고 말았다. 저 쪽 한구석에 앉은 백인 신사 숙녀를 안내해 온 중국인의 표정도 일그러지고 만다. 나는 그런 표정을 살피는 것이 재미있으므로 유심히 관찰해 보았었다.


 간신히 무뢰배들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은 티베트 미남 가수가 다시 몇 곡을 더 선사해 주어서 그럭저럭 기분을 되살릴 수 있었지만 그것도 다시 깨지고 말았다. 노래를 잘 부른다고 생각되면 아까 들어올 때 받은 흰 목도리 천을 가수들 목에 걸어준다.

 

'아하, 그렇게 쓰라고 주는 천이로구나' 싶었다. 내 눈에는 티베트 아가씨들이 상당히 예쁘게 보였다. 전체적으로 이목구비가 또렷해서 미인을 찾기가 힘든 한족들에 비해 훨씬 귀엽고 이쁘게 보이는 것이리라.

 

 다시 등장한 한족 무례한들 때문에 기어이 일어서고 말았다. 우리가 일어서자 우리를 안내해 온 티베트 아줌마가 곧 따라 나왔다. 티베트 아줌마의 예쁜 딸아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오직 우리를 데려다 주기 위해서 따라 나온 것이다.

 

 아줌마의 인도를 받아 호텔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불이 꺼진 길을 따라 오다가 아줌마를 돌려보내고 가게를 찾아 음료수와 과일을 조금 사 가지고 왔다. 고산병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응급처치방법으로 과일을 먹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글을 읽어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호텔 방으로 들어서니 K선생이 맥없이 누워 있었다. K선생을 보자 이제는 내 몸 아픈 것은 잊어버리고 만다.


 "좀 어떻소?"
 "아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한가지뿐이다. 내일 아침이라도 당장 배낭을 매고 돌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조금 고민하다가 이내 마음을 굳혔다. 여기까지 힘들게 왔다고는 해도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건강유지이므로 돌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해발고도가 낮은 곳으로 조금이라도 빨리 내려가서 고산병 증세를 없애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방법이다.  


 "오늘 이 밤은 참는 대로 참고 내일 아침엔 배낭을 매고 돌아 나갑시다. 여기서 여강 가는 버스는 자주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내일 아침까지는 참아야 합니다."


 별실 방 두 개에 각각 한 사람씩 주무시게 하고 나는 응접실 소파에서 자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게 훨씬 마음 편한 일이다. 두 분은 '인솔하고 다니는 대장이 편한 곳에서 자야 한다'고 거듭거듭 우기셨지만 두 분을 모시고 다니는 입장에 있는 나로서는 내가 조금이라도 고생하는 것이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알므로 내 고집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참, 오늘 하루는 길고 긴 하루였다. 다른 날과 다름없는 같은 24시간이었지만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날도 드물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우릴 기다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