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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장안 서안 1

by 깜쌤 2005. 10. 7.
서안

 

                                        <서안 성벽>

 

 서안은 섬서성(산시성)의 성도이며 관중분지(關中盆地)의 중앙부에 자리잡은 천년고도이다. 예전부터 장안(長安)으로 불려온 도시이다. 북쪽으로 위하(渭河)가 동쪽으로 흐르고 남쪽에 는 종남산이 자리잡은 곳에 자리잡은 유서 깊은 도시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세운 호경(鎬京)에서 그 기원이 시작되는 장안은 한에서 당에 이르기까지 약 1,000여 년 동안 번영해 왔다. 가장 번영했던 당대(唐代)에는 인구 100만이 넘는 거대도시로 발전하여 서방에도 그 이름이 알려졌으나 그 이후로는 쇠퇴 일로를 걸어오다가 지금은 유적과 고적이 산재한 멋진 관광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서안 역에 내리면 웅장한 성벽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이 성벽은 명(明)나라 때 재건한 성벽인데 주위 길이만 13km나 되어 한번은 올라가 볼만한 명소가 되어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서안은 역사적 도시이다. 서안까지 갔다면 꼭 가봐야 할 1순위는 아마 진시황 병마용(秦始皇 兵馬俑)이 아닌가 싶다. 병마용이란 진시황이 죽은 후 군대의 일부를 순장시키는 대신에 흙을 구워 만든 실물 크기의 인형을 묻은 것을 말하는데, 1974년 어떤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후로 현재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2000년에 중국을 갔을 때 병마용을 찾아가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받은 충격은 상상이었다. 현재까지 3개의 갱(坑)이 발굴되었는데, 그 가운데 1호 갱만 해도 6,000여 병마가 실물 크기로 정연하게 늘어서 있어 금방이라도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들고 달려나올 것만 같다.

 

 놀랍게도 이들 병사들은 모두 다 얼굴 표정이 각각 다 다르고, 손에는 무기까지 들고 있어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갱내에 묻혀있는 병사들과 말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동쪽을 바라보며 줄을 지어 정렬하여 있는데 신기하게도 남쪽의 병사는 남쪽을, 북쪽의 병사는 북쪽을 바라보며 서있다.


 2호 병마갱의 평면은 曲자형태로 되어있다고 한다. 갱내에는 기마병, 보병, 궁병(弓兵)과 전차들이 혼합된 군대가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 병마용은 약 1300여개 정도이며 전차 80여대와 함께 다량의 금속병기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3호 병마갱의 평면도는 凹자형태로 되었다. 이곳은 1호와 2호갱을 통솔하는 지휘본부로 알려져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안 교외에는 당현종과 양귀비 사이의 로맨스로 널리 알려진 화청지가 자리잡고 있다. 화청지(華淸池)는 서안에서 25㎞ 정도 떨어진 여산(驪山) 산기슭에 있는 온천으로 역대 황제들이 별장을 세워 휴양했던 곳이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서주(西周)시대에 이곳에 려궁(驪宮)을 세웠으며, 당나라 현종 때에는 이곳을 더욱 크게 넓힌 뒤 이름을 화청궁(華淸宮)이라고 고쳤는데 이곳이 온천 위에 지워졌으므로 화청지(華淸池)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서안 시내에는 종루(鐘樓)와 고루(鼓樓)가 자리잡고 있다. 종루에는 종이, 고루에는 북이 있어서 낮에는 종을, 밤에는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그 외에도 온갖 비석을 모아놓은 비림이 있는가 하면, 서유기로 널리 알려진 당나라의 고승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의 번역과 그것을 소장하기 위해 정부에 건의하여 세운 대안탑이 있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보면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바로 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