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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포도의 도시 투루판 - (14) 포도 먹고 간떨어지기

by 깜쌤 2005. 10. 5.

음악과 춤에 취해 있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와 보니 우리의 호프 ##%%군이 비닐 봉지 두 군데에다가 엄청나게 많은 포도를 담아 나오고 있었다.


 단번에 중국인 포도지기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와 항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포도지기가 얼굴을 붉혀가며 핏대를 돋구는 것으로 보아 너무 많이 따왔다는 것이리라.

 

그럼 따온다면 엄청 많이 따서 본전을 뽑지 우리가 달랑 한 송이 들고나올 사람들이냐 말이다. 이 멀리 객지까지 와서 누구 좋으라고 그냥 나온단 말인가? 조선족 엘리트 아줌마가 나서서 잘 설명을 하고 이야기를 해서 포도지기를 설득하고 우리도 양보해서 10원을 더 내기로 했다.


 하여튼 우리는 그 포도를 가지고 그 뒤로 이틀이나 더 배터지게 먹어야 했다. 나중에는 그 포도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할 정도였으니 그 양을 짐작 할 수 있으리라. 마침 우루무치에서 만난 조선족 식당의 주인아저씨가 가이드로 오셨다가 이 사실을 보고 함께 나서서 도움을 주었다. 그 아저씨 왈,


 "같은 동포에게 공짜로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몇 푼 안 되는 포도 가지고 우리 중국인들이 이렇게 굴어서 정말 미안합니다."


 도리어 우리가 조선족 가이드 아저씨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같은 동포 아니면 누가 이렇게 말해주겠는가? 
               

 한보따리 포도를 안고 시내로 돌아온 우리들은 투루판 빈관 옆 회교도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하루 동안 얼굴이 익은 서글서글한 사장아저씨 왈,


 "여보쇼, 남조선 친구들, 당신나라에 난리가 났어, 난리가..."
 "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나라에 큰 일이 났다면 그건 대형 사고가 났다는 말인가 아니면 전쟁이라도 났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귀국하지? 갑자기 별별 생각이 다 들며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단 점심을 시켜먹기로 했다. 어제 형님이 드신 부추(정구지) 덮은 그 국수가 너무 먹고 싶어서 시켰더니 8원이라고 한다.


 "보소, 주인장 어른! 어제는 그게 7원이었는데 오늘은 왜 8원이오?"
 "어제도 8원!"
 "그래요?  여기 이 일기장을 보시오. 내가 7원이라고 기록해 둔게 보이지 않소? 분명히 7원이었소."
 "아! 미안!! 7원!"


 결국 우리가 이긴 셈이다. 일기장내의 금전출납부를 보여주며 가격을 이야기하는데 자기들이 이길 도리가 있는가 말이다. 이 사람들은 작은 허점만 보이면 바가지를 덮어씌우려 덤빈다.

 

나중에 나온 음식을 보니 어제는 부추 고명을 덮었는데 오늘은 양고기에다가 토마토, 피망을 볶아서 다른 쟁반에 담아 왔다. 항의한 보람이 있다. 자기도 자존심이 상했는지 다른 요리라면서 다른 형식으로 요리를 해 온 것이다. 속으로는 흐뭇하기만 했다.


'우린 그렇게 만만한 어리숙한 여행자가 아냐, 이 친구야.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지. 흐흐흐' 속으로 중얼거리며 맛있게 한 그릇을 해치웠다. 한낮의 땡볕을 가리워주는 포도 넝쿨 밑에서 먹는 식사는 얼마나 고소하던지......


 "주인장, 아까 말한 난리라는 게 도대체 뭐요?"
 "미국이 당신 나라를 차지한 가운데 우리 북조선이 핵무기를 개발해서 ...... 쏼라 쌀라~~"


'아하! 이 친구가 지금 북한 핵무기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다. 괜히 떨고 쫄았네.' 가슴을 쓸어 내리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완전히 일방적으로 북한 편을 들고 있다. 하기사 여긴 중국이니 그럴 수밖에 더 있겠는가?
  
 버스를 타고 우루무치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언제 다시 여기를 와 볼 수 있으려나.... 투루판이여 안녕! 그리고 천산이여 안녕! 버스 안에서 찬찬히 살펴보는 천산 자락의 경치는 환상,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