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낙원 찾아 헤매기 - (2)

by 깜쌤 2005. 9. 30.
현대식으로 멋지게 지은 터미널을 빠져 나오자 밖은 모든 것이 황량했다. 도로는 포장이 안되어서 그런지 물웅덩이가 곳곳에 보였고 그 곳으로 차들이 지날 때마다 흙탕물들이 제 마음대로 튀고 있었다.

 

터미널 건물 바깥 한구석에 울긋불긋한 비닐 천으로 만든 포장마차 집들이 납닥하게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이기에 안을 엿보았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이 보였다. 터미널 가까운 곳에서는 그럴듯한 음식점을 찾을 수 없었으므로 거기라도 우선 들어가서 허기를 면하기로 했다.

 

중간에 조리대 겸 음식 먹는 상이 있고 사방으로 작은 나무 의자를 놓아 걸터앉아 먹는 포장 마치를 생각하면 영락없이 상상과 일치한다.


 조금 살이 있어서 통통하면서도 예쁘장하게 생긴 티베트 주인 아줌마에게 넓적하게 굵게 썬 국수를 시켰는데 여기서는 티베트 말로 "툭파"라고 부른다고 했다. 제법 국수 가락이 굵었다.

 

거기에 잘게 다진 고기를 듬뿍 섞어 넣고 붉은 양념기름을 확 풀어서 기름을 둥둥 띄워 내어 주는데 조금 뻑뻑한 느낌이 들었다. 중국 요리는 어떻게 만들어도 기름투성이 같다. 만두도 한판 시켰는데 그것도 여기서는 "모모스"라고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야채나 야크 고기를 소로 넣은 것이어서 맛도 괜찮았고 먹을만했다. 이왕 먹을 것이라면 좀 잘 먹자는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아 두부요리에다가 고기 한 접시를 추가했다. 다시 거기다가 툭파 3그릇과 만두 한 그릇을 시켜 먹고 나니 모두 29(우리 돈 4,350원)원이 되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조금 잘 생긴 남자는 나중에 알고 보니 주인 양반이었다. 부인은 장사를 하고 자기는 그냥 옆에 앉아 노는 것 같았다. 나야 원래 잘 먹는 체질이어서 아무것이나 안 가리고 먹지만 다른 분들에겐 국수가 조금 느끼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난 우리들은 여관을 찾기 위해 배낭을 매고 나섰다.


 시내 중심가까지 가기엔 거리가 너무 먼 것 같아서 그냥 터미널 부근에서 여관을 구하기로 했다. 이리저리 고개를 둘러 찾아보다가 조금 새 건물인 듯한 장춘반점을 골라 찾아들었다.

 

이제 한창 개발 바람이 불어닥친 곳이므로 도시의 모든 짜임새가 아직은 어설프기에 좋은 여관이 있으리라고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여관 출입문이 앞쪽에 있어야 하는데 이 여관은 출입문이 거리 쪽이 아닌 뒤쪽으로 붙어 있었다. 새로 지은 큰 건물이어서 그런지 위용만은 당당했다. 주인을 찾았더니 약간 마른 아저씨와 퉁퉁한 아주머니가 나왔다. 영어가 안 통하므로 할 수없이 필담을 해야 했다.


 "우리는 한국인들이오. 묵을 방이 필요하오. 3인용 방이 있는지요?"
 "방이 있긴 한데 하나는 2인용, 하나는 1인용입니다."
 "세 사람이 자는 방이 필요합니다."
 "예. 있습니다. 하나는 2인용, 하나는 1인용입니다."
 "예?"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3인용 방이 있긴 한데 하나는 2인용이고 하나는 1인용이라니..... 헷갈린다.


 "그러면 방을 좀 보여주시지요."


 아가씨를 따라 위층에 올라가서 보게 했더니 H선생님과 K선생은 모두 입을 함박 벌리고 내려 오셨다. 멋지다는 것이다. 너무 좋아하는 표정을 지으면 가격 흥정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 다시 정색하고 물어보았다.


 "얼마요?"
 "110원 주세요."


 달리는 대로 어찌 다 줄 수 있는가? 우리끼리 의논을 하는데 보고 오신 두 분이 하는 이야기가 110원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찌 그대로 다 줄 수 있단 말인가? 달라는 대로 다 준다면 이건 배낭여행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다.

 


 "100원 드리지요."
 "안됩니다. 우리 집은 새로 지은 건물이어서  모든 게 다 새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하. 그래요? 그런데 당신은 티베트 사람이 아니고 한족 맞지요?"
 "예. 한족입니다. 먹고살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겁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우린 한국인입니다. 나는 특별히 한족을 좋아합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그래요? 그렇다면 100원으로 합시다."
 "감사합니다."


 조금만 추어주면 사람들은 다 좋아하게 마련이다. 한족들이 부지런하고 성실하므로 한족들을 특별히 사랑한다고 해 주었더니 단번에 10원을 깎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배낭을 매려고 하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제동을 걸었다. 그녀는 일단 자기 남편에게 뭐라고 닦아세우는 이야기를 퍼붓고 나서는 우리에게 새로 가격을 흥정해 왔다.


 "우리 집은 새집입니다. 그러니 꼭 110원을 받아야 합니다. 처음에도 우리가 110원을 불렀지 않습니까?"


 어이가 없어진 우리들이었지만 사장의 체면을 생각해서 못이기는 척하고 우리들이 양보를 하고 만다. 그런데 이 양보가 나중에 우리들에게 큰 도움으로 다가올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