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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포도의 도시 투루판 - (8) 화염산 오르기

by 깜쌤 2005. 9. 28.

잠시 바람이 잦아들자 다시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용기를 내어 다시 저 앞 모래 언덕으로 계속 올라가 보기로 했다. 눈앞에 보이는 언덕을 넘어가면 저 멀리 투루판 시내가 보일 것 같아서 걸음을 재촉했지만 작은 언덕 너머엔 또 다른 언덕이 나타난다.

 

 모래 언덕은 모두 자주 빛이 바닥에 깔린 붉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발 밑을 자세히 보니 우리가 밟고 서 있는 능선 위에는 공룡 뼈다귀 같은 흰 돌이 날카롭게 뾰족이 솟아나 저 멀리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돌멩이 하나를 뽑아들어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차돌 같은 돌인데 조금 퍼석한 것 같았다. 그 중에서 조금 잘 생긴 녀석을 골라 배낭 속에 기념으로 챙겨 넣었다.


 어디까지 가야 모래 언덕이 끝날지를 몰라 오른쪽 옆에 가파르게 자리잡은 모래 언덕에 오르기로 했다. 청년들과 함께 기세 좋게 올라보기로 했지만 반도 못 올라서 우린 포기하고 말았다. 숨이 찬 것은 물론이고 발이 푸욱 푸욱 빠져 들어가서 잘못하다간 유사(流沙)에 빠져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솟아올랐다.

 

 결국 포기하고 내려가기로 했다. 모래 산 중턱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보기보다 경사가 급해서 까마득한 느낌이 들었다. 내려갈 땐 미끄러지다 시피하며 기어내려 갔다. 배낭 속에 간직해두었던 비닐 봉지를 꺼내 화염산 모래를  퍼담았다.


 내 기념품은 주로 그런 것이다. 돈을 주고 사기보다는 이런 것들을 기념품으로 수집해둔다. 터키 아라라트 산에서 가져온 조개껍질과 붉은 흙, 태국 동남부 사무이 섬에서 떠온 희디흰 모래, 사도 빌립의 무덤이 있는 터키 파묵칼레에서 가져온 화석 등은 나의 소중한 추억의 상징물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묘한 승리감을 느꼈다. 택시가 천불동 계곡을 빠져나와 투루판 시내로 향할 때 화염산 밑 도로에서 우리는 모래 폭풍의 진수를 보았다. 사방이 순식간에 붉은 빛으로 가득 차더니 승용차 앞 유리창으로 붉은 뱀들이 떼를 지어 밀어닥치는 것 같았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붉은 모래들이 온갖 형상을 만드는데 갖가지 기괴한 짐승들을 만드는 것 이다. 가만히 있으면 단순한 모래바람으로 끝나겠지만 자동차가 시속 80킬로 이상의 속도로 마주 달리는 판국이므로 온갖 기묘한 모습들이 눈앞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붉은 모래가루들이 도로 위를 꿈틀거리는 모습 그 자체는 수 만 마리 뱀 떼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것만 같다. 하늘이 어둑어둑 해지면서 해가 보이질 않는다. 사방이 붉은 빛으로 덮여있는 가운데 컴컴해지는 것이어서 기괴한 것은 물론이고 이상하게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 현상이 한 이십분간 계속되는 것 같더니 바람이 잦아들면서 차츰 평온함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고창고성, 천불동, 화염산을 본 것만 해도 이번 여행 목표의 반은 달성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뿌듯한 하루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고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가 투루판 빈관에 묵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건 이 호텔이 싸고 깨끗하다는 이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밤에 위구르 민속 공연이 이 호텔 뒷마당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서재랄 것도 없는 내 서재에는 삼성당 출판사에서 발간한 10권으로 이루어진 '실크로드'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그 책을 구입한 것이 아마 지금부터 약 17년쯤 전인데 나는 그 책을 보며 실크로드 여행을 꿈꾸어 왔었다.

 


 위구르족의 공연이 이루어진다는 그 무대는 처음부터 낯이 익었다. 데자뷰 현상이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입장료는 20원이다. 공연시간은 한 40분쯤 되는데 한번은 볼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는 조금 엉성한 것 같지만 말이다.
   
포도넝쿨이 우거진 호텔 뒷마당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은 붉은 색과 노란 색을 주조로 하여 곱게 차려입은 위구르 아가씨와 남성들이 등장하는데 전통악기를 반주로 하여 이루어지는 춤사위가 아름다웠다. 춤동작은 우리의 전통무용보다는 동작이 더 큰 것 같았고 회전하는 동작이 많아 더욱 더 활기차 보였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위구르인들은 황인종과 백인종의 특징을 다 가진 아주 독특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전통 음악이나 리듬은 아랍 음악이나 터키 음악과는 또 다른 맛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찌 들으면 중국적인 요소도 조금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제일 마지막 순서로는 관광객들까지 다 함께 춤을 추는 순서도 선보였는데 괜찮은 아이디어 같았다. 주종을 이루는 관광객이 중국한족이어서 그런지 영어 안내가 없는 것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그런 대로 볼만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실크로드 책을 새로 꺼내어 확인해본 결과 배경사진이 똑 같은 것으로 보아 여기서 촬영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