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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포도의 도시 투루판 - (5)

by 깜쌤 2005. 9. 25.


 사방천지가 모두 흙으로 이루어진 유적지이다. 군데군데 무너지긴 했지만 성곽 흔적이 사방에 뚜렷이 남아있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이겨내고 굳건히 버텨온 유적들을 보면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성 둘레로 성을 보호하기 위한 강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성은 기본적으로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내성(內城), 외성, 궁성의 삼중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외성은 장방형으로 되어 있으며 성벽의 두께는12m이고 높이만도 11.5m 정도였다니 그 규모의 웅대함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흔적들을 살펴보면 저절로 알게 되듯이 대부분 흙으로 되어 있다.

 


 내성은 남서 양면의 성 담이 대부분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약3km이다. 내성의 중간에 하나의 큰 망대가 있는 데, 높이가 15m 정도이며 흙으로 쌓은 탑이다. 외성 안 서남쪽으로 는 산문, 정원, 설법당, 장경루, 대법전, 승려방 등으로 구성된 대형사원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냥 거대한 흙덩어리로만 보이니 큰일이다.


 당나라 시대 때의 고승으로 이름이 높은 현장(=삼장법사)이 불경을 배워오기 위해 서역을 여행했던 것이 서기 628년이다. 그는 이 고창고성에서 한달 정도 불경을 가르쳤다고 한다. 화염산을 배경으로 웅장하게 건설된 고창고성은 기원전 1세기 경부터 건축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고창군, 고창왕국, 화주(火州)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1300여 년 간 버텨오던 고창고성은 14세기경에 크게 훼손되었고 그 이후로는 거의 폐허가 된 형태로 사막의 열기 속에서 굳건히 버텨오고 있다.


 열기 속에 발걸음을 옮기는 나는 뜨거운 더위를 실감했다. 반바지를 입었기에 햇빛에 노출된 정강이 부분은 그냥 따끈하게 익어 가는 느낌이었다. 살갗이 따가운 정도를 넘어 익어 가는 기분이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입안도 그냥 타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연신 물병 속의 물을 입으로 부어넣지만 갈증이 계속되었다. 한참을 걷다가 더위에 지친 나는 흙벽 그늘 속에 들어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북쪽 입구 방면을 보면 그 너머로 불타는 듯한 화염산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며 누워있다.


 이곳 저곳을 거닐며 감회에 젖어있던 나는 다시 기운을 차려 돌아 나왔다. 땡볕 아래 위구르 소녀 둘이 흙벽 위에 올라서서 하나는 춤을 추고 다른 한 소녀는 애절한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한참을 서서 듣고 서 있었다.

 

 비록 그녀들이 원했던 당나귀 수레는 타주지 않았지만 우리가 사진기를 들이대자 아무 부담 없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위구르 소녀들이여!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