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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 샹그릴라를 찾아서 - (3)

by 깜쌤 2005. 9. 23.


새벽에 눈을 떠보니 기차는 아직도 레일 위를 줄기차게 달리고 있었다. 밖은 어둑어둑한데 그 어둠 속을 세밀하게 살펴보니 저 유명한 석림역을 지나서 나타나는 거대한 호수 옆을 달리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이제 곧 곤명에 도착할 것이다. 시계를 살펴보니 오전 6시가 지나고 있다. 


 새벽을 가르며 달리는 기차도 곧 얼마 안 있으면 종점에 도착할 것이므로 일행을 깨웠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도시인 려강(麗江 리지앙)까지 가야한다. 따라서 곤명역에 내려서도 동작을 빨리 하여 터미널로 곧장 가야하므로 서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곤명역에 도착하니 아침 6시 50분이 되었다. 24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그러니까 거의 열흘만에 돌아온 곤명이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 셈이 되었다. 아침은 나중에 먹기로 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버스 정류장에 가보니 려강행 버스는 11시 30분에 있다는데 요금이 거금  152원이나 되었다. 돈도 돈이지만 그때까지 기다리려면 시간이 너무 아까우므로 려강 가는 길목에 있는 대리(大理 따리)까지라도 가기로 했다.


 대리행 버스는 거의 20분마다 한 대씩 있는 것 같다. 완행요금은 66원이고 직행요금은 104원(우리 돈 15,600원)이나 하는데 시간은 거의 6시간에서 7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미리 인터넷으로 조사한 정보에 의하면 2004년 7월 현재로 곤명과 대리 구간사이에는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버스가 완전히 기어가는 꼴인 것 같았다.

 

 기차를 타고 가면 좋겠지만 기차표 구하기가 너무 어려우므로 대리까지는 무조건 버스로라도 가야만 했다. 직행표 3장을 구한 뒤 두 분은 식사를 하고 오시라고 식당으로 등을 떠밀어 보냈다.


 하루종일 버스를 타야 하므로 무조건 먹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식사를 끝낸 두 분이 내 몫으로 만두를 사왔으므로 터미널 의자에 앉아 만두로 아침을 때웠다. 여행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굶어야 할 경우도 많다.

 

지금이 바로 그런 꼴이다. 우리가 타야 할 버스는 스웨덴 제 대형 볼보버스였다. 차안에 화장실까지 갖춘 대형이지만 이 녀석이 얼마나 빨리 달려줄 줄은 아무도 모른다.


 곤명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처음엔 잘 달리는 것 같았다. 고속도로에 올라가서 속도를 내니 그저 그만이었지만 얼마 못 가서 곧 공사구간에 접어들고 만다. 포장이 안 된 구간을 대형버스가 달려야 하니 자체가 커서 그런지 도리어 속력을 올릴 수가 없다. 그러니 엉금엉금 기어가야 하는데 거북이가 따로 없다.


 쿠션이 좋은 버스이므로 흔들리기는 또 엄청 흔들린다. 그렇게 털털거리며 흔들리며 요동치며 가기를 물경 4시간이나 하고 나서야 비로소 도로 가의 자그마한 휴게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지긋지긋한 체험이었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에 있는 아란야쁘라텟에서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의 시엠림에 갈 때도 이와 똑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이보다 열 배나 더한 고생을 했다. 내 평생 최악의 버스 승차경험은 그때 해 보았지 싶다.

 


노아의 대홍수 전설이 깃들어있는 터키의 아라랏산 밑에 있는 도시 도우바야짓에서 아브라함의 유적지가 있는 하란 부근의 산릴우르파 까지 갈 때는 기록적으로 오랫동안 버스를 타본 경험이 있다. 최장시간 버스 승차 경험은 역시 터키에서였는데 자그마치 17시간 연속해서 버스를 타본 기억이 있다. 얼마나 지겹던지.......

 

그건 그렇고..... 우르르 내리는 중국인들을 따라 휴게소에 찾아 들어간 우리들은 화장실을 다녀와서 하나뿐인 식당에 찾아갔는데 이게 완전 만원인데다가 무질서가 판치는 뭐 같은 세상이어서 밥을 사먹을 방법이 없었다.


 시간에 쫓길 때는 다같이 줄을 서면 좋으련만 자기만 아는 사람들이므로 새치기를 막무가내로 해대니 말 안 통하는 우리들은 밥 사먹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결국 점심을 굶어야 할 형편이 되고 말았는데 그래도 용감한 K선생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손짓 발짓을 다 해가며 간신히 계란 몇 개를 사 오셨다. 막상 먹으려고 보니 소금이 없는지라 또 다시 가서 온갖 동작을 다해가며 소금을 구해와서는 씩씩거리셨다.   


 "아니 짜식들이 소금 달라는데 왜 안 줘?"


 계란을 까서 소금을 듬뿍 찍어 입안에 넣어본 우리들은 기절할 듯이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그렇게 짠 계란이 다시없을 정도로 짜기만 했던 것이다. 어찌 달걀 색깔이 누르딩딩하더라니 결국은 이렇게도 소태같은 맛을 선사하는구나 싶었다. 이때 K선생이 한마디를 하셔서 우리를 배꼽 잡게 만들고 말았다. 


 "아하, 그러니까 저 가게 주인이 내가 소금을 의미하는 소금 염(鹽)자를 쓰니까 그렇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구나."


 결국 우리는 한바탕 웃어야만 했다. 미리 간까지 다 맞추어 삶아놓은 계란인데 어설픈 외국인 녀석들이 와서는 거기에다가 소금까지 달라고 손짓에다가 발짓까지 하고 결국 공자 앞에서 문자쓰는 격으로 한자실력을 동원했으니 주인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했으랴...... 

  
 엄청 짠 계란을 먹은 우리들은 다시 버스를 탔고 줄기차게 물을 계속 들이켜가며 그로부터 다시 3시간이나 더 시달린 끝에 대리 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 보니 오후 3시가 되었다. 그러니 무려 7시간을 흔들리며 버스를 타고 온 것이지만 앞으로 서너 시간은 더 버스를 타야하니 완전히 기절하기 일보직전까지 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