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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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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이강 유람 - 계림의 진수 (5)

by 깜쌤 2005. 9. 17.


월량산만은 꼭 올라 가보고 싶었다. 웬일인지 6시 조금 넘은 이른 아침에 K선생이 월량산에 올라 보자고 하신다. 너무 반가운 제안이어서 일어나자마자 출발하기로 했다. 오늘 오후까지만 계림에 도착하면 되므로 아침시간을 잘 이용하면 월량산 등반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체크아웃 시간이 12시이므로 여관에는 10시 반 정도까지만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월량산으로 행했다. 이틀 전에 달려본 길이므로 익숙하게 찾아간다. 우룡하 다리에 도착해서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보니 놀랍게도 그 맑던 물색이 황토색으로 변해 있었다. 어제 그렇게 비가 쏟아지더니만 기어이 흙탕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틀 전에 사진을 찍어 둔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던 셈이다.


 월량산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산길을 올랐다. 부지런한 잡상인들이 그새 따라 붙어서 아무것이나 사라고 조른다. 물을 서너 병 사들고 가파른 길을 올랐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숲으로 둘러 쌓여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다.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산 중턱쯤 오르니 그때서야 하늘이 조금 트이며 저 멀리 산봉우리 사이로 아름다운 경치가 조금 고개를 삐죽이 내밀기 시작했다.


 입장료 바가지를 씌우려고 환장했다는 느낌을 주던 부처동굴 마을이 저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높은데 오르고 보니 경치 하나는 정말 아름답다. 잠시 땀을 식히고 나서 조금 더 올라가자 드디어 밑에서 반달 모습으로 보이던 거대한 동굴 구멍이 나타났다. 참 엄청나게 거대한 천연 아치이다. 잘만하면 경 비행기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치를 지나 뒤로 돌아가니 드디어 전망대가 나타났다. 전망대 부근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경치를 감상한다. 올망졸망한 모습으로 불룩불룩 솟아오른 작은 봉우리들이 연봉(連峰)을 이루고 그 연봉들이 첩첩이 겹겹으로 둘러싼 모습들은 이 세상의 경치가 아니다. 봉우리 사이사이로 자리잡은 작은 동네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좀 더 맑은 날씨라면 더 멀리까지 뚜렷하게 볼 수 있으련만......


 넋을 빼앗긴 사람들처럼 하염없이 앉아있던 우리들은 간신히 정신을 차려 올라온 길을 내려오고 말았다. 언제 다시 또 와볼 수 있으랴..... 월량산 등정을 마지막으로 하여 우린 양삭을 떠나야 했다.

 


호텔에 돌아오니 10시 반이 되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오는데 주인 아저씨의 고함소리가 호텔 카운터를 휘감았다. 마음씨 좋은 아줌마는 우리들의 인사를 건성으로 흘러 듣고 작별 인사조차 잘 해주지 않았으니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른다.


 어쩌면 그게 우리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그렇게 헐값으로 방을 이틀이나 빌려주었느냐'고 닦달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고 K선생이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허허 웃고 말았다. 그랬다면 우린 축하 받아야한다. 중국인과의 여관비 경쟁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터미널에 와서 12시 10분 발 고속 버스 표를 끊었다. K, H선생은 과일을 사러 시장에 가셨기에 그 동안 배낭을 맡은 나는 터미널 입구 부근 계단에 자리잡은 한 평 짜리 국수가게에 앉아 아침 삼아 국수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말았다.

 

 탁자 3개에다가 앉은뱅이 의자 대여섯 개가 전부인 국수가게에 앉아 일기를 꺼내 쓰고있는 나에게 얼굴이 말끔하게 생긴 중국인 청년이 접근해 왔다. 영어가 제법 유창해서 대화하기가 좋았는데 이 청년이 자기 가방에서 공책 한 권을 꺼내들기에 바짝 긴장을 했다. 서씨 아줌마와의 기억이 떠올라서 긴장을 하고 살폈더니 그 청년 하는 소리가 웃기는 것이었다.

 


 "당신이 한국인이니까 분명히 한국 글자를 읽을 수 있는 것 아니가?"
 "말이라고?"
 "그럼 이 글을 좀 영어로 옮겨줄 수 있겠는가?"


 청년의 공책을 받아들고 보니 모처럼 기분이 통쾌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청년의 공책에 예쁜 한글로 써놓은 글의 내용인즉, '이 청년의 영어 실력은 보통이 넘는다. 한국인들을 설득하여 물건을 사게 하기도 하고 안내를 자청해서 바가지도 씌우는 편이니 각별히 조심하기 바란다'는 것이었다. '으흠, 모처럼 재치 있는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는구먼.' 흐뭇하게 읽고있는데 그가 다시 재촉을 해 왔다.

 


 "무슨 말입니까?"
 "아, 이 글의 내용은 말이오..... 당신에게 아주 좋은 내용이오. 당신은 믿음직하고 친절하고 영어 실력이 유창하므로 한국인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그런 내용이오."
 "진짜입니까? 정말입니까? 사실입니까?"
 "그렇소."


 갑자기 내가 통쾌해졌다. '야, 요 녀석아. 너 지금까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사기 좀 쳤겠구나. 우리 한국인들을 바보로 아나 본데 함부로 까불면 큰 코 다치는 법이다.'


 "나도 한마디 써줄까요?"
 "예, 부탁합시다."


 때맞추어 K, H 선생이 과일 보따리를 안고 돌아왔기에 서둘러 배낭을 매고 계림행 버스를 타기 위해 일어나고 말았다. 


"그만하면 됐소. 충분하오. 그럼 다음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