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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이강 유람 - 계림의 진수 (4)

by 깜쌤 2005. 9. 13.


싱핑 읍내 골목을 걸어오다가 대나무를 잘게 자른 작은 나무토막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열심히 자기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사진의 소재로서는 더없이 훌륭한 것이다. 내가 말을 걸고 있는 사이에 K선생이 사진을 찍기로 했다.


 "할아버지, 이 그림 얼마 합니까?"
 "2개 6원만 주시오."
 "그렇다면 2개 5원 드리지요."

 

 할아버지가 작업을 하시는 문간 옆에는 "등소평 동지가 다녀가신 집"이라는 표시판이 있었다. '으흠, 이 할아버지는 등소평이 다녀간 사실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싶었다. 중국 경제 발전의 선봉장이었던 등소평이 직접 이 집을 찾아왔을 리는 만무하고 아마 지나가는 길에 잠시 말을 걸었거나 관심을 보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등소평이 진짜 의도적으로 방문하였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 가운데 최고가격을 매겨두신 작품은 등소평이나 모택동 얼굴이었고, 모택동에 의해 제거 당한 임표의 얼굴 그림도 있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자그마한 대나무 조각에 그린 볼품 없는 그림이지만 늙어서라도 자기 할 일을 만들어나가는 할아버지의 자세만은 높게 사고 싶다.


 읍내에 들어와서 장거리 전화를 걸어주고 돈을 받는 구멍가게에 들러 미스터 지앙에게 전화를 했다. 계림을 떠나기 전에 곡 한번 들러달라고 우릴 초대했던 분인지라 이제라도 전화를 해서 시간 약속을 해두어야 했다. 

 


 "미스터 지앙, 잘 계시지요? 우린 지금 싱핑(흥평)에 와있습니다. 이강 유람을 즐겼지요.아시다시피 그동안 일정상의 문제로 연락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요? 저는 지금 양삭에 와있습니다. 독일인 단체 관광객들을 모시고 안내해 드리고 있는 중입니다."
 "좋은 일이지요. 내일 저희들은 계림으로 돌아가서 모레는 곤명으로 떠날 예정입니다. 만날 수 있는 날은 내일뿐인데요...."
 "그러면 계림 시내 오셔서 호텔을 잡거든 다시 연락 주십시오. 그러면 모시러 가겠습니다."
 "좋습니다. 내일 낮에 계림 도착하면 다시 연락 드리지요."

 


전화를 하는데는 약 2분 정도 걸렸는데 요금은 0.9원이다. 처음에 뻣뻣한 자세를 보였던 구멍가게 주인은 우리가 영어로 대화를 하자 눈이 동그래지며 갑자기 친절한 자세로 돌변하는 게 신기했다. 스타는 그런 맛에 사는 모양이다. 남들이 자기를 알아주고 떠받들어주고 치켜 세워주니 우쭐해지는 그런 기분 말이다.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오던 우리들은 복리(푸리)에서 내렸다. 여기 장터가 유명하다고 해서이다. 하지만 그것은 서양인들의 눈에 그렇게 비칠 터이고 우린 그런 시장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봐 온 처지이니 그렇게 신기하지가 않는 것이다. 푸리 시장의 모습은 우리네 재래시장의 모습과 흡사하다. 시장 바닥에 깔린 생산품들은 우리들 것 보다 훨씬 조잡하고 싸다는 것 말고는 별로 다른 게 없다.

 


 시장기를 느낀 우리는 국수라도 말아먹으려고 음식골목을 찾았다. 수수한 의상을 걸친 아줌마가 말아주는 국수 물은 진한 기름이 둥둥 떠있어서 기름 물에 빠뜨린 면발을 건져먹는 형상이 되었다.

 

어찌 되었거나 맛만 있으면 되는 일 아닌가? 국수를 먹은 후 시장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았는데 생선전이나 고기전은 핏물이 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는데다가 냄새까지 고약해서 더 둘러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양삭 시내에 돌아오니 오후 3시경이 되었다. 이젠 쉬는게 낫다 싶었는데 돌아오자 마자 비도 세차게 내려서 모처럼 낮잠을 즐기기엔 안성맞춤이 되었다. 피로하기도 했던 터라 샤워를 하고 난 후엔 침대 위에서 골아 떨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