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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이강 유람 - 계림의 진수 (5)

by 깜쌤 2005. 9. 14.


 발코니에서 일기를 쓰다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하자 짬을 내어 서가를 내려다본다. 비가 오는 날이므로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모습이 마치 동그란 동그라미들의 움직임처럼 보인다. 이런 저런 모양과 색깔의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마치 카트린느 드누브가 주연배우로 나온 프랑스 영화 "셸브르의 우산"의 한 장면 같다.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자니까 배낭을 메고 지나가는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느낌으로 단번에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가움에 말을 걸어보았다.


 "총각! 한국인이오?'
 "예. 아저씨, 안녕하세요?"


 이젠 확실히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을 인정 안 할 수가 없다. 머리카락 색깔이 희끗희끗하니 누구라도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


 "어디 갑니까?"
 "호텔을 찾으려고 하는데요. 이 골목에 00게스트 하우스가 어디쯤 있습니까?"
 "아, 거기요? 그냥 이 거리를 따라 내려가며 왼쪽 골목을 잘 살피시오. 한 50미터 못 가서 나올 거요."
 "감사합니다."

 


 씩씩하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젊은이를 보자 헛되이 보낸 내 젊은 날이 생각나서 씁쓰레한 기분이 들었다. 참 요즘 젊은이들은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20대 30대였을 때만 하더라도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살았다. 다시 한참 일기를 쓰고 있는데 밑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도저히 못 찾겠어요."
 "그럼 기다리시오. 내가 내려갈 테니까."


 청년을 데리고 그가 원하는 여관에다가 데려다 주었다. 우리도 그 여관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어제 그냥 이 집에 묵게 된 것이다. 그 호텔엔 입구에 태극기가 걸려있었고 손님을 모셔다 주어서였는지 주인 아줌마가 고맙다며 연신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해왔다.


 다시 호텔에 돌아와 낮잠에서 깬 두 분을 모시고 서가 거리 구경을 나갔다. 오늘은 거리 끝까지 가 본다. 늦은 오후인데도 관광객들이 바글거렸고 외국인 팀들도 상당수 있었다. 골목의 끝자락엔 이강이 보였다.

 


마지막 거리엔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이 모여 작은 거리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런 대로 볼 만했다. 돌아올 때는 서가 거리 건너편의 양삭 행정중심가 거리를 둘러보았다. 인민위원회 건물과 군 사령부 건물 같은 것이 몰려있는 구역은 상당히 깔끔하고 깨끗해서 중국 도시의 거리답지가 않았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원시인 식당에 다시 가 보았다. 이 집은 상당히 손님으로 북적이는 집이어서 늦게 가면 자리가 없다. 손님이 많다는 것은 음식 맛이 남다르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대충 둘러본 양삭 서가 거리의 요리는 상당히 서구적이어서 서양인들의 입맛에 맞게 개조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집은 중국인들이 북적거리는 것으로 보아 정통중국요리를 고집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이 집의 통닭 바베큐는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저녁을 시키면서 통닭 한 마리를 함께 요구했더니 미리 예약을 해야한단다. 한 마리에 40원이었는데 미리 시켜두고 저녁을 먹고 있으면 나중에 가져오는 것이다.

 

저녁을 가볍게 먹고 통닭 한 마리 사 가지고 와서 발코니에 앉아 뜯어먹는 그 재미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낯선 거리에서 이런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양삭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익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