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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실크로드 : 우루무치 - (3)

by 깜쌤 2005. 9. 8.

 


                                               <우루무치 시내 모습>

 

 그건 그렇고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신강위구르 자치구 박물관을 가야한다. 거기 가서 그 유명한 '누란의 미녀'를 봐야 한다. 선선(=누란)에서 발굴된 아리안 계통의 미녀 미라인 누란의 미녀 말이다. 박물관까지는 슬슬 걸어가기로 했다. 지도상으로 보아선 한 2km쯤 만 걸어가면 될 것 같다. 그 정도 거리는 항상 걷는다는 것이 배낭여행자의 신조 아니던가?


 음식점을 나와 걷다가 지하 상가를 만났다. 그렇다면 기념 CD를 사야지 싶어 한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중국은 현재 가히 불법 복제물의 본산이다. 온갖 종류의 음반이 다 있는데 가게는 주로 한족들이 요런 짓을 잘 하는 모양이다. 중국인들이 돈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겪어보면 알게 된다.


 이 돈 천재들에게 싸게 사야 하는데 내 재주가 중국인들을 못 따라가니 헐하게 산다기보다 바가지만 안 쓰면 된다. 신강에 관한 VCD를 한 장에 10원씩 주고 두 장 샀다.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화질은 괜찮았다. 하여튼 질기게 훑어보고 끈질기게 깎아야 된다. 마음에 안 들면 나가면 되고......


 신강민족박물관을 향하여 슬금슬금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한두 번 물어보긴 했지만 쉽게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도착하고 보니 공사중인 것 같다. 그래도 악착같이 요리조리 굽이돌아 들어가서 보니 다행히 개관은 하고 있다.


 입구엔 위구르 족 아줌마들이 수다 떠느라고 정신이 없고 속은 좀 어두컴컴하다. 날은 더운데 선풍기도 없고 에어컨은 처음부터 없다. 이 덥고 초라한 박물관 속에 세계적인 보배인 누란의 미녀 미라가 누워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하지만 걱정 할 필요가 없다. 새로 깔끔한 박물관을 짓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팍슨 백화점은 동남아시아의 대도시엔 거의 다 있던데......>

 


 난 거기서 그렇게 보고 싶었던 누란의 미녀를 보았다. 3800년 전의 옷을 입은 채로 뼈다귀 위에 바짝 건조해버린 피부를 걸친 미라가 세월의 더께를 안고 누워 있는 것이다. 아! 바로 이게 바로 그 미라이구나! 내가 이걸 보려고 수 천리 길을 달려온 것이로구나. 감회가 새로웠다.


 오뚝한 콧날과 갸름한 얼굴 윤곽이 영락없는 백인 아리안족의 얼굴이다. 예전 서역에 이런 민족들이 살았단 말이지? 혹시 이들이 우리 조상과 어떤 연관은 없는 것일까? 그들은 왜 이런 사막 한가운데로 흘러 들어왔어야 했을까? 온갖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선다.


 그 여자는 인도 유럽족, 다른 말로 아리안족 즉 서양인이다. 머리카락은 누가 봐도 금발이고 눈이 깊은데다가 속눈썹까지 확실하게 남아있다. 서양여인이 분명한 이 미인은 누란고성에서 발굴되었기에 이 미라를 누란 미인이라는 뜻으로‘키쿠란 쿠잘리'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누란의 미인이 처음 세상에 알려졌을 때 위구르인들은 감격하여 '우리 민족의 어머니’라고  이름 붙였다. 유명한 누란 미인과 함께 진열되어 있는 미라들은 대략 3천년 전쯤의 사람들이다.


 박물관의 미라들은 가죽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있다. 제법 장신구도 갖추고 있는데다가   문신까지 표시가 난다. 입고 걸친 옷이나 차림새는 오늘날의 위구르족 차림새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과연 위구르족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겠지만 미라가 된 사람들이 살았던 당시에는 아직 위구르족이라는 민족이름이 생기기 전이니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민족이 그 옛날 북서쪽 어디에선가 흘러들어왔다는 내용이 담긴 윤이흠 서울대 교수님(종교학 전공)의 이야기는 믿겠는가? 그 분은 고구려와 발해가 우리 민족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내용으로 온갖 다양한 증거를 들어가며 서울신문에 글을 쓰신 적이 있다.  관심이 있다면 한번 찾아 읽어볼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