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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사막을 달리다 - (5)

by 깜쌤 2005. 8. 29.
 기타로는 신디사이저를 교묘히 구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나는 돈황 역에서 갑자기 그의 음악을 떠 올렸다.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공영방송 NHK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실크로드 프로그램을 보면서 얼마나 가고 싶어했던 돈황이던가?


 돈황 여행의 시발점이 되는 그 기차역에 지금 내가 와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차는 이내 출발해버리고 만다. 돈황은 감숙성 서부사막 한가운데 자리잡은 오아시스 도시로서 하서회랑(河西回廊)의 서쪽 끝에 위치에 있다.

 

약 2천년 전, 한 무제가 장건을 서역에 파견하여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서아시아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개통시킨 후 돈황군을 설치하였다. 한 무제는 하서회랑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동부에서 한(漢)인을 이주시켰는데 그 이후로 성장을 계속한 도시이다.

 

 


 실크로드를 간다는 생각에 잠시 잊고 있던 기침이 막상 잠을 자려고 하니까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모두 잠자는데 혼자서만 기침을 한다는 것이 남 보기에도 뭣했다. 그럴수록 더욱 더 자야했다.


 우리의 목적지인 우루무치는 기차가 꼬박 하루종일을 달려야 할 거리이므로 자야만 하는 것이다.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았는데 창 밖을 보니 선선( 善)역으로 기차가 들어서고 있었다. 선선까지 왔다면 잠자는 사이에 합밀(合密 하미)을 지나버렸다는 셈이 된다. 아뿔사! 하다 못해 합밀역 정도는 봐두어야 하는데..... 

 

그렇지만 뚜루판이 가깝다는 것으로 만족을 하자. 뚜루판이 가깝다면 우루무치가 부근에 있다는 것이니 우리 여행의 목적지가 눈앞에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기에 안심이 된다.

 



차창 밖은 계속되는 사막이지만 그 사막의 군데군데엔 가스를 태우는 불꽃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탄 기차와는 반대 방향으로 기름을 담는 대형 유조 기차가 계속하여 동쪽으로 동쪽으로 연달아 달리고 있었다. 아,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중국의 유전(油田)지대인 모양이다.


 이 황량한 사막 밑이 모두 기름밭이라니.... 중국인들은 복도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면 그저 땅은 넓어야한다. 사람도 많아야한다. 그러다 보면 자원이 많이 묻혀있는 곳도 있는 법이고 뛰어난 인재도 나타나는 법이니까 말이다.

 


 선선은 왕오천축국전에 누란(樓蘭)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유명한 오아시스 도시 국가이다. 기원전후를 중심으로 수 백년 동안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 실크로드를 따라 번성한 신비의 오아시스 왕국으로서 주민들은 주로 유럽계 아리안 인종이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이다. 유럽계 아리안 인종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은 굉장한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선선 왕국은 동서 문화교류의 거점으로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우면서 번성하기도 했지만 통일된 중국과 흉노의 틈바구니에 끼여 시달리다가 기원전 77년 한나라가 보낸 첩자에 의해 왕이 암살 당함으로써 비극적인 운명을 다하고 마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선선이란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기원 후 6세기쯤 사라지고 말았다.  ‘잃어버린 왕국’선선은 오랜 세월동안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반 스웨덴의 탐험가 헤딘(Hedin, Sven Anders, 1865 - 1952)에 의해 살아있는 듯한 살결을 가진 귀족풍 여인 미라가 발견되면서 누란을 소재로 한 많은 문학작품이 쏟아지기도 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만주를 여행하며 느낀 일인데 만주 여성들은 한마디로 쭉쭉빵빵 스타일이다. 얼굴 윤곽도 뚜렷해서 미인이 쉽게 눈에 띈다. 만주족과 서역사람들과의 관계는 과연 어디까지였을까? 중국인들이 자기들 역사로 편입시키려고 하는 고구려와, 그들과 관계를 맺었던 민족들의 원래 모습은 어떠했을까?

 

 다시 한번 인생을 산다면 난 그런 공부를 해보고 싶다. 누란 왕국을 이루었던 사람들의 미라는 나중에 우루무치 박물관에서 철저하게 확인을 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여인도 내 눈으로 확인을 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