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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흉노! 훈! 흉노!

by 깜쌤 2005. 7. 16.
흉노

 

 우리가 연도를 나타내는데 일반적으로 쓰는 '서기(서력기원)'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정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 탄생 전 108년, 그러니까 기원전(서기전) 108년 고조선은 한나라 무제의 군대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다.


 "한(漢)"이라는 나라를 건국한 사람은 건달 출신의 '유방'이다. 유방의 강력한 라이벌은 초(楚)나라 항우였다. 그래서 장기판에는 초와 한이 등장하는 것이다. 한은 약 200년 간 계속되다가 잠시 왕망에게 나라를 뺏기는데 그 나라를 우리는 전한(前漢)이라고 부른다.


 


                 <중국 서부의 거대한 황야 - 뒤에 눈을 인 산들이 기련산맥의 연봉들이다>

 

 여행기에 무슨 중국역사가 등장하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도 계실 것이지만 왜 내가 실크로드를 밟고 싶어했는지를 밝혀두고 싶기에 잠시 객소리를 해보는 것이다. 나는 청년시절에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어본 적이 있다. 나는 그 책을 통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에 젊은이들에게 꼭 읽어보기를 당부하고 싶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중국 북방에 거주하던 '흉노'라는 유목민족과 한이라는 정착 영농민족간의 치열한 세력다툼이 흥미진진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록자인 사마천이 한족 출신이므로 흉노를 의도적으로 비하한 흔적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예전부터 흉노라는 민족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많았다. 어쩌면 이 문제는 우리 민족의 기원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으므로 뿌리 알기 차원에서도 나름대로 자료를 모아보고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면 엄청 길어지므로 그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쯤에서 다시 돌아가 흉노에 대해 잠시 알아보기로 하자.

 

 2002년 월드컵 준결승에서 우리와 맞붙은 터키가 무엇 때문에 우리나라를 형제의 국가라고 부르겠는가? 1950년에 치러진 한국전쟁 당시의 참전 인연 때문일까? 그렇기도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터키가 우리와 형제국가라고 불리게 된 데에는 역사적인 근거와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터키의 역사는, 기원전 3세기 무렵 중국의 북방에서 건국되어 한나라에 위협적 존재였던 흉노 제국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흉노의 세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했으면 진시황제가 기원 전 215년에 장군 몽염으로 하여금 만리장성을 구축하게 하였을까?


 


                                                <이 광야는 흉노의 무대였다>

 

 진나라가 중국대륙을 통일한 시기에 흉노국도 기원전 209년경에 성립된다. 시황제가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를 건설한 뒤 자기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했듯이 흉노도 자신들의 최고 통치자를 선우(禪于)라고 하였다. '통치권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는 의미를 가진 선우는 유목세계의 천명사상에 근거해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단군의 통치권도 하늘로부터 왔다고 하지 않은가?


 중국의 역사 기록에는 흉노가 기원전 4세기경부터 유목국가를 성립시켰다고 전하여 온다. 결국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볼 때 한나라 성립이전부터 끊임없이 중국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민족이었던 흉노는 투르크계, 몽골계 그리고 북방민족들로 구성된 국가이었으며 투르크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유목민들의 국가인 흉노는 유목 형태를 국가의 관직 및 군대조직에 도입하여 이십사장(二十四長)제도를 실시했다. 24개의 등급으로 된 관직아래에는 직급에 따라 수 천명에서 수 만 명에 이르는 기병을 두고 있었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