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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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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중국 시골에서 닭 잡아먹기 2

by 깜쌤 2005. 7. 15.


이 집 입구에도 자그마한 구멍가게를 차렸다. 내가 어렸을 때도 어지간한 동네엔 구멍가게가 다 있었다. 심지어는 한 동네 안에도 구멍가게가 대여섯 개씩이나 있기도 했는데 지금 종루라는 이 동네가 바로 그짝이다. 먹고살기 힘드니까 그렇게라도 해야 살수 있다는 말이다.


 "아가씨, 얼마쯤 기다려야 할까요?"
 "1시간이면 됩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라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뾰족한 수가 없다. 아가씨에겐 여동생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고등학생 정도이고 하나는 중학교 저학년이거나 초등학교 6학년 정도가 되어 보였다. 막내가 밥상으로 쓰는 듯한 판을 내어오고 엉덩이만 걸칠 수 있는 작은 의자를 가져와서는 앉기를 권했다. 우린 마루바닥에 작은 의자를 놓고 앉게 되었다.

 

그런데 제일 어린 그 집 딸이 손으로 짠 휴대전화 주머니 비슷한 것을 꺼내들고 왔기에 흥정이 시작되었다. K선생이 사기로 하고 흥정은 내가 해보기로 했다. 말이 안 통하니 필담을 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만든 거지?"
 "제가요?"
 "직접 만들었다는 말이지? 용도는?"
 "휴대전화를 넣은 집인데요, 제가 만들었습니다."
 "만든 재료를 보고 싶은데....."


 

 

그랬더니 요 맹랑한 꼬마 아가씨가 털실 뭉치를 가지고 와서 보여 주었다.


 "으음. 좋은데..... 8개 정도가 필요한데.... 얼마?"
 "8개 40원입니다."


 8개 40원이라면 한 개당 약 750원 아니던가? 비싸다는 느낌이 들어 8개 20원을 불렀다. 그랬더니 이번엔 8개에 35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제 본격적인 흥정이 시작되었다. 이 지경이 되니 사긴 사야하지만 비싸게 줄 형편이 못된다.


 "우린 돈이 없거든..... 그러니까 8개 20원!"
 "에이 아저씨들도, 8개 30원을 주셔야지요, 그 이하로는 곤란해요."


 이럴 때 일기장이 필요하다. 일기장을 꺼내 금전출납부와 일기 쓴 부분에 붙여놓은 온갖 영수증을 보여주며 우린 이렇게 돈을 절약하며 여행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래도 8개에 30원 주어야해요."
 "좋지. 8개 20원!"


 줄기차게 8개 20원을 불렀다.

 


 "그럼 이제 마지막 가격입니다. 8개 28원!"
 "아니 8개 20원"


 부르고 나니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는 내려오는데 우린 줄기차게 20원만 부르고 있으니 좀 뭐하다. 우리끼리 의논을 한 끝에 마지막 가격을 제시했다.


 "우린 돈이 없지만 네가 아주 예쁘고 현명하니 특별히 봐 주어서 마지막으로 23원!"
 "이야! 한국 아저씨들 대단하시다. 좋습니다. 23원에 가져가세요."


 어느 나라 사람들이고 간에, 나이가 많고 적고 간에 하여튼 여자들에겐 예쁘다고 해주면 거의 다 뜻을 이룰 수 있었다. 이 여학생이 상당히 영악했는데 얼마나 두되 회전이 좋은가하면 닭 값을 흥정할 때 제 언니가 40원을 부르는데도 옆에서 훈수를 들면서 더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닭 값 외에 밥값을 따로 받으려고 할 정도였으니 우리가 현명하다고 치켜 세워준 것이다.

 

흥정을 끝내고 나서 벽을 살펴보니 얘가 받은 상장들이 벽에 수두룩했다. 상당히 머리가 좋은 아이임에 틀림없다. 그러다가 언니가 와서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한다. 우리가 재촉한다고 음식이 빨리 나올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기꺼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가만히 보니 요리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2층 마루바닥 한구석이 그냥 부엌이었던 것이다. 흥정을 하고 일기를 쓰고 그러다가 우린 밥상을 받았다.  


 냄비에 지은 냄비 밥과 두부와 부추를 함께 넣고 삶아낸 약간 짠 요리, 그리고 시금치 비슷한 채소를 데쳐낸 요리, 마지막으로 닭찜이었는데 국물이 많아 찜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의 요리였다. 맛은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고운 언니의 순수한 정성이 들어간 요리였다.

 

 그런데 요리를 먹으면서 아무리 찾아봐도 닭다리가 보이질 않는다. 닭요리는 다리 뜯는 맛에 먹는 법인데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하지만 배도 고팠던 터라 맛있게 먹고는 온가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뒤 아쉬운 작별을 해야했다.

 

 "여기서 따자이 가는 길은 아주 어렵습니다. 미로 같아서 길 찾기가 힘들지요. 원하신다면 제가 어느 정도까지 가드릴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우린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저는 다만 제 마음뿐입니다."


 언니의 마음 씀씀이가 따뜻했다. 비록 닭다리는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지 못했지만 오지 여행은 이런 순수한 사람들을 만나는 맛에 하는 법이다. 그녀의 가족과 손을 흔들어 작별한 뒤 우린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