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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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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중국 시골에서 닭 잡아먹기

by 깜쌤 2005. 7. 14.

 

 

 

 

              

 

     


아침을 굶은 채로 어제 걸었던 길을 따라 따자이를 찾아 가보기로 했다. 론리 플래닛에도 나와있지 않은 마을이지만 그냥 동네사람들 말만 믿고 무작정 찾아 나선 것이다. K선생은 사진장비를 한 보따리 메고 난 삼각대를 들었다.

 

처음엔 신이 났다. 하지만 고개를 넘고 저수지를 지나고 공동묘지를 지나고 다시 언덕을 넘고 끝없이 가기만 하니까 궁금증이 더해가기만 한다. 참 멀다. 거의 한시간 정도를 걸어가니까 드디어 저 멀리 산비탈에 작은 마을 하나가 보였다.

 


 너무 피곤해서 산비탈을 내려간 골짜기 밑에 있는 개울가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어느새 따라 붙어 왔었는지도 알 수 없는 신체 건강한 백인 아가씨들과 청년들이 우리를 앞질러 갔다.

 

쟤들은 워낙 정보에 밝은 아이들이어서 우리가 모르는 것들도 많이 알고 있다. 내 경험으로 보면 백인들의 정보 수집력과 기록하는 습관은 엄청난 것이어서 어지간한 것들은 거의 다 알고 있다. 그런 건 우리도 빨리 배워야 한다.

 


개울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개울가 자갈밭에 앉아서 가만히 살펴보니까 저 앞 산비탈에 장족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집들 밑으로 백인청년들이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더니만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아, 따자이 마을이 별로 멀리 있는 게 아니었구먼,  괜히 힘들어했네...."
 "자, 힘내서 갑시다. 저 따자이 마을에 가서 식사도 좀 하고..."


 아침을 굶은지라 허기가 져서 그런지 힘이 없었지만 마을로 향하는 길을 부지런히 걸어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이 마을은 짐승들의 오물이 길가에 덕지덕지 묻어있고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험한 비탈에 지은 집이어서 아래층이 그냥 노출된 집이 있고 할머니가 어서 오라고 환한 표정으로 손짓까지 하니 반가움에 길을 들었는데 이건 골목길이 숫제 미로나 다름없다.

 


 2층으로 향하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니 남의 집 안이 되기도 하는 요상한 골목길을 요리조리 헤매고 다니며 식당을 찾았건만 그 흔한 간판하나 안보이니 어딘가 속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우리를 손짓하며 불렀던 할머니도 알고 보니 뭘 좀 먹고 가라고 부르는 유혹의 손길이었는데 변변한 식당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에게 닳은 사람들인데 공짜로 우릴 대접하겠는가 싶어 정신이 버쩍 든다. 확실히 여긴 뭔가 수상한 기운이 감도는 이상한 동네였다. 그런데 아까 올라갔던 백인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골목을 헤매다가 구멍가게를 하나 찾았다. 컴컴한 곳에 자리잡은 구멍가게는 버썩 마른 몇 가지의 과자부스러기와 얼음 과자를 준비해두고 있었는데 우리가 얼음 과자 하나씩을 입에 물고 돌 축대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먹고있으니 웬 구경이나 난 듯이 온 동네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구경을 했다. 우린 졸지에 동물원 원숭이가 되고 말았다.

 

 이럴 때 등신처럼 가만있으면 봉이 될 수 있으므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가게를 보던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말이 안 통하니 종이와 연필을 꺼내 필담을 해야했다. 그녀는 상냥한 웃음을 띄며 의자에 앉기를 권해왔다.


 "우린 따자이 갈려고 합니다. 여기가 따자이 마을입니까?"
 "여긴 종루라는 마을입니다. 따지이는 두시간 정도 더가야 합니다. 길도 험하고 멀지요."
 "그럼 어디 먹을 만한 식당이라도 없소?"
 "이 마을에는 없습니다. 대신 내가 닭을 잡아 드릴테니 드시겠어요?"
 "얼마요?"
 "한 마리에 80원(우리 돈 12,000원) 내시면 됩니다. 잡아서 요리해 드립니다."


 80원이면 너무 비싼 돈이다. 무슨 닭 한 마리가 그렇게 비싼가 말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여긴 아주 빈곤한 냄새가 묻어나는 서글픈 동네이다. 그러니 외국 여행자에게 그런 큰돈으로 받고 파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비싼 가격이므로 반으로 후려쳐 보았다.


 "40원으로 합시다."
 "아니오, 토종닭이므로 그럼 70원 내시지요."
 "40원밖에 없소."
 "60원!"
 "40원이라니까....."


 몇 번의 대화가 더 오고간 끝에 아가씨가 결단을 내렸다.


 "좋습니다. 40원!"
 "밥도 줍니까? 당연히 밥 포함해서 그렇지요?"
 "좋습니다. 밥도 줍니다."


 그리하여 우린 아가씨를 따라 아가씨 집으로 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