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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1 My Way (完)

이다도시, 이용식님 습격 사건

by 깜쌤 2005. 7. 7.
 

책보는 방(서재라고 할 것도 없는)을 꾸민답시고 책 보따리를 안고 나르다가 옛날 메달을 하나 찾았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직도 얼굴 뜨거운 기억이 떠올라 망설임 끝에 그냥 사연을 끄적거려 본다. 이것도 나중에 추억거리가 된다 싶어서 말이다.


참, 말하기도 부끄러운 이야긴데 어쩌다가 어리버리한 내가 TV방송 전파를 타게 된 일이 있었다. 사연인 즉 이렇다. 2001년 5월의 이야기이니까 4년 전인가보다.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던 토요일 어느 날 경주역 앞 건너편 도로에서 지도를 들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키다리 백인 청년을 발견했다.

 


나도 남의 나라를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헤매는 것이 취미인지라 어떤 상황인지 단번에 감을 잡았다. 저 청년이 지금 어딜 가야하는데 가는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힌트를 주면 해결 나는 것이다.


"실례합니다. 무슨 일이죠?"

"포항에서 방금 도착했는데 남산을 가려고 합니다. 문제는 어디로 어떻게 가는 줄을 모른다는 것이죠."


출퇴근을 위해 구두를 신고 가방을 들고 있던 터여서 그냥 말로만 가르쳐주고 갈까하다가 오후 3시가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시간에 남산을 외국인이 혼자 가도록 하는 것은 위험하다 싶어 함께 가주기로 했다. 일단 가방은 경주역 매표창구에 맡겨두었다. 기차통근을 몇 년 했으니 역무원 가운데 아는 분이 계셨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온 그는 포항공대에 교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모처럼 짬을 내어 토요일 오후에 경주를 찾아온 것이다. 남산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가볼까 해서 왔단다. 필리페라는 이름을 가진 그와 함께 4시간 동안 남산을 다녀왔다. 


이런 일은 흔히 있는 일이므로 그냥 헤어지려고 하는데 그가 부탁이 있다며 주소를 물어왔다. 뭐 그런 작은 일가지고 주소를 교환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인지라 나도 모처럼 트래킹 한번 가볍게 한 것으로 치고 인사만 하고 헤어지고 싶었다.


"저어......  실은 약 두 달 뒤에 프랑스에서 우리 가족 전부가 한국에 오려고 하는데 어딜 구경시켜드려야 좋을지 몰라서 그럽니다. 제 생각으로는 경주 부근을 구경시켜드리려고 하는데 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요."

“그러면 이메일 주소라도 좀.......”


일이 그렇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약 두 달 뒤에 필리페의 가족들이 프랑스에서 몰려오셨다. 내가 보기엔 그들도 나처럼 그저 그렇게 사는 일반적인 서민 가족들 같았다. 아는 여관 주인에게 부탁해서 부담 없이 묵을 수 있는 깨끗한 방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해드리고 저녁대접을 해 드렸다.

 


 우리 집에 재우고 싶었지만 그때 당시엔 방 여유가 없어서 그러질 못했다. 나도 외국에서 그런 대접을 받으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고맙고 좋은 인상을 받았기에 은혜를 갚는 셈치고 해드린 것뿐이다.


그들은 보름가량 경주에 묵고 돌아갔다. 부산으로 통도사로, 해인사로 쏘다녔던 그들 가족들은 알프스 산록의 그레노블에 산다고 했다. 누이동생은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는데 프랑스에서 교육대학을 다닌다고 했다. 한번씩 시간이 날 때마다 여관에 찾아가서 작은 도움을 준 것 뿐이다. 그러다가 그들은 돌아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몇 달 뒤인 그해 10월 말에 KBS 2TV 좋은 나라 운동본부(지금은 1TV로 옮겨 방송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던 프랑스 출신 이다도시님과, 짝을 이루어 함께 활동하시던 코미디언 이용식씨의 기습을 받은 것이다. 학교 교실까지 쳐들어와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바람에 졸지에 기습촬영을 당했다. 1주일 뒤에  방송이 되었는데 너무 부끄러워 녹화만 해두고 아직까지 한번도 끝까지 보질 못했다.

 


 

선생으로는 베스트 친절 시민으로 뽑힌 것이 전국 최초라고 했던가? 나중에 알아본 결과로는 귀국을 앞두고 인사동 거리를 걷던 미스터 필리페가 ‘한국 생활 중 가장 기억이 나는 분을 꼽는다면 누굴 꼽을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어떤 팀으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는데 그때 내 이름을 대어버렸던 모양이다.


방송 나가고 나서는 빗발치듯이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그날 몇 시간 동안 우리 집 전화는 통화중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때 받은 <베스트 친절 시민> 금메달을 다시 보며 잠시 감회에 젖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기 자랑하는 꼴이 된 셈이니 나도 어지간히 팔불출에 속하는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젠 방도 한 칸 더 생겼으니 이국을 떠도는 나그네에게 작은 인심 정도는 베풀어도 되지 싶다. 어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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