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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1 My Way (完)

아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by 깜쌤 2005. 7. 1.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부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자질구레한 짐을 옮겼기에 피로가 누적되어 그런가보다. 몸이 무거웠어도 다시 꿈틀거려야 헸다. 어제 밤 11시 반까지도 못 옮긴 짐을 오늘 아침 출근시간 전까지 옮겨 두어야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작다. 동네에서도 가장 작은 축에 들어간다. 집이 작으니 마당도 한 뼘 만하다. 마당 깊은 집에 사는 것이 꿈이지만 경제적인 여력이 없으니 그건 꿈으로만 묻어두고 산다. 이층에 방이 두 개 있는데 그동안 15년 간 남이 살았다.

 

처음 집을 구해 빚을 갚느라고 아래층 방 하나를 쓰며 살았다. 방 2개는 남을 주었다. 그러다가 우리 아이들이 커 오르면서 방 2개를 쓰게 되었다. 그동안 틈틈이 돈을 모아 방 값을 갚아주고 우리가 한 칸을 더 쓰고 .....   그렇게 하느라고 허리가 휠 정도가 되었다.

 

지금은 어디어디에서 새내기 중국어 교사(올해로 교사경력 2년 차가 되었다)로 근무하는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따로 방을 한 칸 주어야했다. 또 등골 빠지게 돈을 모아 방 값을 빼주었다.

 

지난 몇 년 간은 대학생을 둘 데리고 사느라고 다른 데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하나는 입대하고 하나는 제 밥벌이를 하게 되어 한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아들 녀석이 복학을 하게 되어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는 초절약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2층에 와서 살던 신혼부부가 덜컥 나간다는 것이다. 올해로 우리 집에 들어 온지가 3년째 되는 부부인데 너무 착했다. 재계약을 한지가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출산을 앞두고 새집을 구해 간다니 말릴 수가 없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2층은 내가 쓰게 해달라고 아내에게 사정을 해왔던 터라 이번에도 아내눈치를 봐가며 부탁을 했다.

 

오늘 아침까지도 떨떠름해 하는 아내에게 그동안 부탁하고 사정사정하고 구슬리고 어루고 달래고 애원하고(?) 매달리고..... 온갖 유치찬란한 애교(?)와 아양을 떨어가며 허락을 얻어내었으니 아내의 마음이 다시 변하기 전에 일단 짐을 옮겨놓고 봐야했던 것이다.

 

일이 돌아간 형편이 그랬으니 눈이 붓도록 일 안 하면 나만 손해인 것이다. 그 동안 영화나 다큐멘터리 같은 내 관심분야를 녹화해둔 비디오 테이프만 해도 350개 정도가 되니 그놈의 비디오 테이프 옮기는 것도 큰 일이다. 테이프 하나에 영화가 3편 정도씩 들었으니 사실 어지간한 비디오 가게보다는 내가 더 좋은 영화 작품들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6월 26일 일요일 낮에는 "서부전선 이상없다"라는 명작 흑백 영화를 교육방송에서 방영했다. 그 영화를 녹화하기 위해 거의 20년을 기다린 셈인데 어찌 놓칠 수 있으랴. 일요일 주일은 내 시간이 없으니 할 수없이 예약녹화를 해야했다.

 

그런 식으로 녹화를 하고 모은 영화가 이제는 제법 수가 모여서 남들이 빌려달라고 부탁해오기도 하지만 대답은 "죄송합니다"라는 것이다.


 일단 비디오 테이프와 음악 CD부터 옮기기로 했다. 각이 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 땀을 흘리며 2층을 오르락내리락 하려니 고역이 여간 아니다. 그래도 행복한 것은 내 서재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남이 시켜서 했다면 입이 댓 발 정도나 나와서 오만가지 욕을 다했으리라.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행복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