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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고향) 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쥐약 보리밥

by 깜쌤 2005. 6. 15.


쥐약 보리밥




소년의 집은 항상 가난했다. 가난해서 가난해서가 아니라 직장을 다니시던 아버지께서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쓰러지게 되자 순식간에 가세가 기울어졌기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하기야 모두가 다 가난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정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비참하긴 매일반이었다.

그러기에 부잣집 아들이나 가난한 집 아들이나 어쩌다 한번 먹는 간식은 모두 엿가락 몇 조각으로

만족했으니 이를테면 간식의 평등화가 철저히 이루어지곤 했던 시절이었다.

  

 



 

 

잠자다가 목마르면 마시기 위해 윗목에 떠놓는 이빨 빠진 사발 속의 물까지도 깡깡 얼어붙던 어느

겨울날 저녁이었다. 그날 초등학교 4학년 짜리였던 소년의 집은 저녁을 굶어야만 했다. 집안에 식량

이 떨어진 탓이었다. 너무 자주 굶던 시절이라 안 먹고 잘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날 따라 소년은 꾸

덕꾸덕해진 시커먼 보리밥이나마 고추장에 쓱쓱 비벼먹고 싶었다.

 

하지만 깡보리밥 한 그릇도 귀한 처지에 그런 것은 감히 욕심 내서는 안될 일이었다. 집안 사정은

다 아는 것이지만 안 먹고 자기엔 왠지 허전했다. 저녁을 굶는다는 것은 그 다음날 아침도 굶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찬물을 두어 사발 들이키고 잠을 자려고 했다. 그 때 지나가던 아주머니 두 사람

이 좁쌀을 팔러다니다가 어찌 어찌하여 소년의 집에 까지 오게 되었다.  

 

 

 

 

좁쌀 장수 아주머니가 팔러 온 좁쌀은 단 2 되였다. 집안 식구가 여덟 명이나 되는 처지에 좁쌀

두 되는 이삼일 치 식량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좁쌀 장수 아주머니가 흥정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소년은 노란 좁쌀 밥을 떠올리며 군침을 삼켰다. 노란 좁쌀 밥을 고추장으로 비벼두고

동치미 국물이나마 들이킨다면  더 이상의 소원이 없으리라고 여겼다.

 

그러다가 소년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오늘 저녁거리가 되어야 할 그 노란 좁쌀을 갑자기 아주머

니가 보자기로 싸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격 흥정에서 단돈 “1원”이 안 맞아 못 팔겠다며

아주머니가 일어서신 것이다. 소년의 어머니가 가진 돈이 좁쌀 값에 1원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연필 한 자루가 3원, 5원하던 시절의 일이니 1원이 큰돈이라면 큰돈이었다. 결국 흥정은 깨어졌고

년의 집 식구들은 모두 그 날 저녁을 건너뛰었다. 노란 좁쌀 밥을 떠올리며, 꼬질꼬질하게 때묻은

부자리 밑에서 소년은 괜히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만 했다.

 

 

 

배가 고프면 잠이 잘 안 오는 법이지만 소년은 어찌 어찌하여 꿈길에서나마 편안함을 맛보고 있었다.

그때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오셨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께서 오셔서 소년의 어머니와

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잠에 취하고 기력이 없던 소년인지라 일어날 형편이 못되

었다.

 

사고로 거의 목숨을 잃어버릴 뻔했던 소년의 아버지가, 단돈 1원 때문에 좁쌀 두 되를 못 구하고

굶주림에 지쳐 잠이 든 자식들을 보고 회한의 눈물을 훔치는 것을 소년은 이부자리 밑에서 곁눈으

로 살펴보고 있었다.

 

여보, 자식새끼들을 이 고생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두....”

아니 당신은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우?”

“내일 아침엔 우리 모두 쥐약 먹고 죽읍시다. 쌀 한 되 빌려와서 이밥(=쌀밥)이나마 배터지게 실컷

먹여놓고 쥐약 먹여 죽이고 우리도 죽읍시다.”  

 

 

 소년은 이부자리 밑에서 정신 없이 천지신명을 찾았다. 어쩌면 내일 아침엔 떠오르는 해를 보지

못할 것 같았다. 내일 아침 쥐약만은 먹지 않게 해달라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제삿날 밤에만 만

나보던 조상님께 빌고 또 빌었다.

 

일년 중 가장 큰 달이 떠오른다는 정월 대보름에, 떠오르는 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고

소년의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라서 달님에게도 빌고 또 빌었다. 세상없어도 쥐약만은 먹

기 싫었다.

 

그렇지만 잠자리를 걷어차고 일어나서 아버지께 쥐약만은 먹이지 말아달라고 빌 용기가 소년에

게는 없었다. 그냥 하염없이 빌기만 빌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눈을 떠보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리밥이 상에 올라왔다. 죽은 뒤 세상에 보리밥이

올라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아직 죽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시

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이승에서 다시 먹어보는 밥상에 보리밥이나마 차려져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했지만 아침밥에

는 차마 숟가락이 가질 않았다. 어제 저녁에 소년의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던 쥐약이 밥공기 어디엔

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아서 선뜻 숟가락이 가질 않는 것이었다. 소년은 슬며시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았다.

 

얘야. 넌 왜 안 먹니?”

응, 그냥 먹기 싫어서....”

어제 저녁도 못 먹었는데 오늘 아침은 먹어야지.”


그러던 소년이 자라서 다시 아버지가 되었다. 오늘 아침은 별미라면서 아내가 보리밥을 내어왔다.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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