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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이승과 저승사이

by 깜쌤 2005. 7. 12.

 
                                      <새로 생긴 다리 밑 그 어디서부터 떠내려 갔었으니....>

 

 

 

이승과 저승사이

 

 

소년은 강으로 나갔다. 며칠 전에 큰물이 흘러 뻘건 물이 온 세상을 삼킬 듯이 흘렀으니 강에서 멱을 감지 못한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오늘쯤에는 강물에서 물장난을 하며 여름 더위를 날려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동네 앞을 휘감아 흐르는 강은 평소엔 수량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폭은 100미터가 넘어 눈높이가 낮은 아이들 눈엔 그저 넓게만 보였다. 소년의 눈엔 교과서에서만 본 황포(黃布) 돛대 뜬다는 서울의 한강이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엄청난 강으로 생각되었지만 강이라고 부르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내성천이라고 부르는 어른들도 있었지만 동네 아이들에게는 이름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여름철에는 겨우내 하지 못했던 목욕을 실컷 즐길 수 있는 동네 목욕탕이었고 놀이터였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봄날이면 냇가로는 연두색 수양버들 가지가 사방으로 휘늘어져 항상 하늘거리며 흔들렸다. 소년의 눈엔 그게 좋았다. 수양버들 그늘에 앉아 끝간데 없이 펼쳐진 모래밭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여름 땡볕에 모래가 반짝이는 것은 더욱 더 좋았다. 모래 속에 금가루나 은가루, 그도 저도 아니면 이름 모르는 보석가루들이 가득한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저 보석들을 건져 부자가 되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강물은 제법 맑게 흘렀다. 물이 얕은 모래바닥 양쪽으로는 맑은 물이었지만 물이 감돌아나가는 깊은 곳은 약간 푸른색이 감도는 붉은 색이었다. 저런 곳만 안 들어가면 될 것 같았다. 외출복 겸, 잠옷 겸, 교복으로 입는 흰색 긴 팔 러닝셔츠와 검은 색 반바지를 벗어 수양버들 가지에 걸어두었다.

 

그리고는 진흙 밭을 뒹굴었다. 홍수가 난 뒤론 항상 진흙 밭이 만들어지던 시절이라 뒹굴며 놀기엔 수양버들 밑 강가보다 더 좋은 장소가 없었다. 잠시 뒤에 동네 친구들이 왔다. 모두 소년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 녀석들도 모두 심심하기는 매일반이었을 것이니 강가로 모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으리라.

 

 

 

그렇게 뒹굴다가 한 녀석이 냇물에 들어가 보자고 제안을 했다. 어차피 온몸에 진흙이 가득했으니 들어가긴 해야했지만 왠지 겁이 났다. 소년의 눈앞에 갑자기 담임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이 떠올랐다. 작년에 공부 잘 했다던 지서장님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당분간은 절대로 강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선생님의 호통이 귓전에 맴돌았지만 들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모두들 서로 눈을 쳐다보았다. 다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잠시 서로 흠칫하기도 했지만 한 녀석이 앞장서자 그 다음엔 차례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물에 들어가 뽀당당거리며 물장구치는 그 재미를 뿌리칠 녀석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얕은 물에만 놀았다. 흐르는 물에 밟히는 강모래의 감촉이 칼칼했다. 물은 따뜻해서 놀기엔 그저 그만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 가보기로 했다. 물이 배꼽을 넘어 가슴에까지 차올랐다. 덜컥 겁이 나서 돌아서 나오려고 했지만 물살의 거대한 힘에 휩쓸려 나올 수가 없었다.

 

 

 

순간 몸이 공중에 부웅 뜨는 듯 하더니 이내 몸이 밑으로 가라앉았다. 얼마나 깊은지는 몰랐지만 하여튼 발이 밑바닥에 닿지 않고 다시 몸이 위로 떠올랐다. 고개가 물위로 올라오는 것도 잠시 다시 몸이 가라앉았다.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이 막혀왔다. 또 몸이 위로 떠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만큼 짧은 시간이나마 숨을 들이킬 수 있었지만 물을 같이 삼켜야만 했다. 이른바 말하는 물먹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하여튼 숨이 막혀왔고 배가 점점 불러왔다는 사실밖에 몰랐다. 소년은 그런 과정을 통해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얼마나 떠내려갔는지 모른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며 숨을 깊게 들이 쉴 수 있었다.

 

 

 

경주에서 오후 4시경에 부산(부산진. 부전)으로 가는 기차가 있다. 그 기차가 소년의 고향에는 오후 1시경으로 맞춰 다녔다. 참으로 오래 전 일이지만 그래도 기차 시간은 엇비슷하게 아직까지 맞춰 다닌다.

 

강 건너 동네에서 읍내 중학교를 다니던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토요일이어서 일찍 기차를 타고 집에 가던 길이었는데 강을 건너기 위해 옷을 벗다가 강물에 떠내려 오는 수박덩어리를 발견했다.

 

그러다가 곧 그게 아이들 네 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정신없이 강물로 들어선 것이다. 초등학생 키로는 한길이 넘는 물깊이지만 중학생들에게는 가슴팍까지 밖에 차지 않았다. 그 쌍둥이 형제가 양쪽 겨드랑이에 하나씩 아이들을 끼고 물 밖으로 데려 나온 것이었다.   

 

 

 

 소년들은 모두 올챙이배처럼 뽈록한 배를 안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서야 모두 살았다는 생각에 그리고 엄마 생각에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곧 귀 뺨이 얼얼해지며 눈앞에 번갯불이 번쩍거렸다.       

     

쬐그만 것들이 겁 없이 강물에 들어갔다고 형들에게 왕복으로 뺨을 터지고 엎드려뻗치기는 보너스로 했다. 형에게 풀려나 옷을 찾으러 수양버들 가지 사이를 지나며 집에 가서는 절대로 오늘 일을 이야기하지 않기로 아이들끼리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그 날 저녁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동네 아이들 집마다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년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아직도 모르지만 하여튼 정신없이 혼이 나고 한 달간 냇가 출입금지조치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사흘 뒤엔 어김없이 냇가에 가서 물장구를 치고 놀았으니 말이다.

 

 

 

                      

 

 

 

깜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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