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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누님! 미안합니다 - 입학시험

by 깜쌤 2005. 6. 28.
  입학시험


11월이 되면 소년이 살고 있던 동네의 6학년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예외 없이 부모와 자식간에 다툼이 일어났다. 거의 일방적으로 부모의 승리로 끝나는 다툼인데 분란을 일으키는 그 주원인은 중학교 입학 시험 원서를 내느냐 마느냐하는 것이었다.

 

먹고살기가 극도로 힘들던 시절인지라 자식들은 노동 공급자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기에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공부가 끝나는 경우도 흔했다. 먹을 것도 없어서 굶는 것이 다반사인데 아들딸들이 중학교로 진학을 한다면 허리 휠 정도로 비싼 교육비가 없는 살림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년과 누이는 이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니 형제자매가 많은 집에서는 누가 중학교 진학을 하느냐가 심각한 문제였다. 형제가 적을 경우에는 부모님들의 의지 여하에 따라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안 그런 집도 많았다. 소년보다 두 살 많은 누나는 벌써 며칠을 울고 살았다. 너무 울어 두 눈두덩이가 퉁붕 부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누이는 두 살 적은 남동생이 성적표를 받아오는 날마다 기가 죽었다. 그럴 때마다 방구석에서 울었다. 두 살씩 터울이 나는 남동생 둘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어쩐 일인지 성적표에 ‘우’하나 없는 ‘수’만을 줄기차게 받아 왔다.

 

한 학년이 두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고는 해도 학급당 인원이 60명을 넘어서고 있었으므로 시골 학교지만 전교생은 700여명을 쉽게 넘었다. 학업 성적은 수, 우, 미, 양, 가라는 5단계 용어로 표현되었는데 당연히 ‘수’가 최고였다.

 

“@@야, 너는 어쩔 수 없이 중학교 가는 것을 포기해야겠다.”

“엄마는 왜 나만 중학교 못 가게 하는데? 위에 언니도 중학교 갔잖아?”

“집안 형편이 어렵단다. 너까지 중학교가면 너 밑에 있는 남동생은 또 어쩌니?”

“그건 나중 일이고 난 중학교 가야 되. 옆집 춘선이도 가고 영순이도 가고 말자도 간다고 얼마나 자랑을 했는데.....”

“그래도 형편이 그러니 어떻게 하니?”

 

누이와 어머니가 입씨름을 하는 것이 자기 탓이라는 것을 잘 아는 소년은 슬며시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달랑 한 칸뿐인 방밖으로 나와서 저녁달이 서산에 비낀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가 암만 그래도 난 중학교 가고 말 테야.”

 

누이는 결국 고함을 질렀고 그날 저녁 내내 빗자루와 회초리로 엄청 맞은 뒤에 차가운 윗목에서 새우잠을 잤다. 그 날 밤 내내 소년은 중학교 진학이 좌절된 누이 옆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누님! 이 다리가 생각나는지요?>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누이는 울었다. 그리고 줄기차게 어머니를 졸랐다. 아버지께서 다른 곳으로 일하러 가서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 집에 오셨으므로 어머니께 조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그 때마다 누이를 달랬다.

 

“그럼 엄마, 입학 시험만이라도 치르게 해 줘.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안가도 돼.”

“그래? 그럼 너 시내 중학교 시험 봐서 들어갈 수 있니?”

“거긴 너무 세잖아?”

“그러니까 넌 안돼. 떨어지면 동네 사람보기에도 창피스러울 것이니 아예 그만 둬라.”

“그러면 가까운 읍내 중학교 시험 보면 되지 뭐.”

 

어머니는 누이 실력으로는 입학하기가 조금 벅찬 먼 시내의 일류 여학교 이름을 들먹였고 그럴 때마다 누이는 그 학교보다는 조금 들어가기가 수월한 읍내 여자 중학교 이름을 들면서 시험이나마 치르게 해 달라고 졸랐던 것이다.

 

누이는 시험이나마 치르게 해달라는 애원으로 며칠을 버텼고 어머니는 결국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차피 중학교 진학을 못하게 될 바에야 합격하고도 입학을 못하는 또 한번의 아픔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매몰차게 거절했던 것이다.

 

소년은 누이가 입학 시험이나마 쳐보지 못한 것이 자기 때문임을 아는지라 중학교 입학 시험을 보는 날부터 합격자 발표가 나는 며칠 동안은 내내 기가 죽어지냈다.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어머니는 애써 누이를 달랬다.

 

“봐라. 너 보다 공부를 잘 하던 옆 집 춘선이는 그 여자 중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졌다고 그러더라. 그러니 너도 시험 보았으면 어쩔 뻔했니?”               

“내가 춘선이 보다 공부 못한다는 증거가 어디 있는데? 난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단 말야.”


결국 누이는 초등학교만을 졸업하고 직업 전선으로 가야 했다. 입학 시험 철이 되면 누이의 그 부어오른 눈 때문에 소년은 잠을 잘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런 세월이 흐르고 흘러 두 살 위 누이는 결혼을 하고 이제 머리가 허옇게 센 중년 부인이 되었다. 누이가 낳은 생질 둘은 대학을 졸업하여 어른이 되었다.

 

그 오랜 세월동안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입학 시험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생질 둘이 모두 무사히 입학시험을 거뜬히 통과하고 졸업하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생질이 입학 시험을 봐서 떨어지면 누이 머리가 나빠 그렇다고 할까봐서도 더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누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미안합니다. 누님 덕에 제가 이렇게라도 그냥 먹고 삽니다. 누님!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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