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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호텔 찾아 3만리

by 깜쌤 2005. 6. 14.


                                                   < 중국 기차역 플랫폼의 상인>

 

유주를 통과한 시간이 오후 4시경이었으니 지도상으로 보아서는 이제 두 세시간이면 계림에 도착하지 싶다. 기차 안에서는 미스터 지앙의 아들 양양의 '묘기 대행진'이 벌어지고 있었다. 볼펜으로 우리들을 쓰윽쓰윽 그리는 것이었는데 아이들 그림답게 뼈대만 이어져 있는 그림이다.


 그리고는 그림 한 모퉁이에 한자로 누구라고 표시를 하는 재치를 발휘해서 모두들 한바탕 웃게 만들었다. 양양이의 본명은 강천봉(지앙 티엔 쯔어)인데 아이가 얼마나 통통하고 밝은지 귀여움 그 자체였다. 부인도 대단한 미인으로 중경(重慶 충칭-임시정부가 있던 곳) 부근이 고향이라고 했다.

 


 계림이 가까워지자 온통 날카로운 절벽으로 이루어진 기암괴봉(奇岩怪峰)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높이는 크게 높지 않아서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느낌이 든다.

 

 석회암지대 특유의 회색이 묻어나는 색깔이어서 조금 칙칙한 감이 들기도 하지만 남국(南國)의 숲이 그 칙칙함을 메워주므로 보기엔 그저 그만이다. 특히 산봉우리들이 아름다운 지대가 나타나자 미스터 지앙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마디 거들었다.   

  
 "저기 저쯤이 아마 양삭(양수오)일겁니다."


 양삭이라면 배낭여행자들이 몰린다는 전설적인 거리인 서가(西街)가 있는 도시이다. 계림 경치의 핵심인 양삭이라니..... 괜히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서서히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계림북역에 도착한 것이 오후 6시 50분이었으니 거의 스물 여덟시간을 기차 안에서 보낸 셈이 되었다.   


 "여관을 잡거든 전화를 해주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일이라도 당신들을 우리 집에 모시러 가리다. 혹시 장가계(張家界 지앙지아지에)로 갈 예정이어서 기차표를 구할 예정이라면 전화해 주시오.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미스터 지앙의 정성어린 인사를 뒤로하고 계림북역(桂林北驛)에 내린 우리는 곧 엄청난 인파 속에 파묻혀 그들 가족과 작별했다. 계림 자체가 세계적인 관광지이므로 기차에서 내린 인파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역을 빠져나와 역 광장에 서보니 엄청나게 넓기는 넓은데 어찌 좀 휑하다는 느낌이 든다. 뭔가 좀 수상하다. 론리 플래닛을 꺼내들고 시가지 약도와 실제 모습을 맞춰봐도 어딘가 이 빠진 것 같고 썰렁하기만 하다.

 

 가만히 살펴보니 여긴 계림역이 아니다. 계림역이 아닌 계림북역이므로 완전히 다른 곳이다. 이럴 땐 조금 황당해진다. 중국어로 된 시가지 지도를 손에 든 것도 아니니 상황판단 하기가 어렵다. 이제 해가 넘어갈 시간인데..... 해가 저버리면 문제가 커진다. 낯선 도시에서는 밤에 방향감각을 찾기 어렵고 잠자리 찾는 것은 더구나 더 어려워진다.


 지나가는 청년을 잡아 물어보았는데 영어가 조금 되었다. 시내한가운데 자리잡은 특급호텔인 계림반점의 위치를 물었다. 그 부근에 배낭여행자 숙소가 많다니까 일단은 거기까지 찾아가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계림 시가지 풍경>

 

 우리가 찍어놓은 계림반점을 가려면 계림 시내로 들어가야 하고 그러려면 시내버스를 타야한다면서 시내 버스 정류장을 가리킨다. 그 청년의 말로는 버스를 타고 가서 한번 더 갈아타라는 것이다. 형편이 이렇다면 택시를 타는 게 낫다.


 순식간에 해가 지면서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가는데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어주던 일단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가는데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어주던 청년이 택시 기사에게 뭔가를 이야기해준다. 아마 계림반점 가는 외국인들이니까 잘 모셔드리라는 말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