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15분, 기차는 미끄러지듯이 곤명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 간 지도를 펴놓고 어느 도시를 거쳐갈 것인지를 확인해 보았다. 곤명에서 석림을 거쳐 남녕으로 간 뒤 류주를 거쳐 계림으로 갈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계림에서 위로 북동쪽으로 올라가서 귀주성의 귀양을 지난 뒤 류주를 지나 계림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귀양을 거쳐가는 것으로 밝혀졌다. 곤명과 남녕 사이를 연결한 뒤 광서장족
자치구를 지나는 철도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는 서안에서 곤명가는 철도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이리라.
이젠 기차 안에서 뒤적뒤적 게으름 부리는 일만 남았다. 우리 칸 하포에는 중국인치고는 아주
미인인 아주머니와 통통하게 잘 생긴, 그러면서도 지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30대 중반의 아저씨가 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부부였는데
양양이라 불리는 그들 부부의 아들이 함께 탔다.
나는 제일 위 상포이니 아래로 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제일 위 상포는 공간이
좁아서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 바닥으로 내려가서 창가에 붙은 작은 의자에 앉아서는 일기를 쓰는 게 상책이다. 일기 쓰기가 지겨워지면
상포에 올라가서 병든 병아리 마냥 졸고......
그러다가 해가 지고 대지가 어둑어둑해지자 수퍼에서 미리 사 가지고 간 컵 라면을 먹기로 했다.
중국인들이 차를 엄청나게 좋아해서 늘 입에 붙여두고 마시기에 차안에는 항상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있다. 승강구 부근에 마련된 공간에 가보면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어서 거기 가서 물을 받아오면 된다.
이때는 아주 조심해야 한다. 뜨거운 물을 컵 라면 통에 받아오는 것이므로 기차가 흔들려 다른
손님의 몸에 쏟기라도 하면 대형사고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기차 안에서 먹는 라면 맛은 별미 중에 별미이다.
중국 라면은 크기가 큰데다가 맛이 좀 진해서 먹고 나면 물이 많이 켜인다. 배낭여행 안내서를 꺼내 읽어보기도 하고 일기를 써보기도 하고 우리끼리 잡담을 하기도 하다가 이내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밤 10시가 되면 객실 담당 차장이 다니면서 강제로 불을 끄기 때문에 그 전에 잠드는 게 편한
일이다. 그렇게 하여 또 하루가 기차 안에서 사그라져 갔다. 그러는 중에도 기차는 덜컹거리며 계속 낯선 풍광 속으로 헤쳐나가고
있었고......
'배낭여행기 > 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텔 찾아 3만리 (0) | 2005.06.14 |
---|---|
계속, 줄기차게 엄청나게 먹는다 (0) | 2005.06.13 |
타는 것도 장난이 아니니... (0) | 2005.06.09 |
왕빠를 찾아서 (0) | 2005.06.08 |
귀국하려면 리컨펌을 해야한다 (0) | 2005.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