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전지에 서서

by 깜쌤 2005. 6. 4.


전지 입구 좌측엔 중국 분재원이 있어서 중국인들의 분재를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공원 전체를 깔끔하게 잘 가꾸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중국인 특유의 빈틈이 엿보이고 있다. 유럽과 비교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여러 나라는 확실히 세밀하게 뒷마무리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무래도 지저분한 축에 들어간다.


 전지 호숫가를 따라 마련해 놓은 산책로를 따라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았다. 호수를 따라 복도 형식으로 전각을 길게 연결시켜 둔 곳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마작을 즐기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마작판에 현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승패를 낸 뒤 계산할 때 카드가 왔다 갔다 하기도 하는데 혹시 그게 나중에 현금으로 바꿔치기 되는지 거기까지는 잘 모른다.     

   
 전지엔 유람선이 출발하기도 한다. 호수가 워낙 크다보니 상당히 많은 유람선이 여기저기 떠 있는데 연이어 부두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전지 호수 물은 진한 초록빛으로 변해 있다. 어쩌면 부영양화 현상이 심각한지도 모른다.

 


 물은 더러워도 호숫가에 줄맞추어 심은 수양버들의 가느다란 가지는 바람에 이리저리 흐느적거렸다. 곱게 차려입은 선남선녀들이 짝을 이뤄 자유롭게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집 생각이 났다.


 공원 여기저기에선 많은 사람들이 연을 날린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워낙 많은 압제 밑에서 고생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보통 순하디 순한 순민(順民)들로 평가받는다. 권력을 가진 자와 탐관오리들의 온갖 압제와 탄압을 견뎌 내며 살아오다 보면 온갖 일을 겪는 법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들은 연을 날린다고 한다. 우린 연을 날리며 액을 멀리 떼어버린다는 뜻으로 연줄을 끊기도 했지만 중국인들은 억울함과 답답함을 날려버린다는 의미로 연줄을 끊기도 한다고 한다. 

 


 이들의 연은 우리 연보다 월등하게 크고 모양 또한 다양하다. 온갖 종류의 연들이 창공을 수놓은 모습을 보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우린 발걸음을 멈추고 연 날리는 인간 군상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얼레가 어린이 자전거 바퀴만큼이나 크고 연줄 또한 튼실하다. 바람 또한 시원하게 불어오는 거대한 호숫가에서 날리는 것이니 연날리기에는 아주 이상적인 환경이다.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하늘 한 모퉁이에서는 연싸움이 신명나게 벌어지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의 유서 깊은 고적도시 말래카에는 연 박물관이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연들을 모아 전시해 놓은 곳인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연은 초라한 방패연 하나뿐이었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녹조류 가득한 전지 호수에서 어부들은 거대한 반두모양의 그물을 물 속에 드리워두었다가 지렛대 한쪽 끝을 밟아 그물을 들어올리는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기도 하는데 고기는 간 데가 없다.

 

 영락없는 강태공이지만 예전의 그런 강태공은 이젠 더 이상 보이질 않는다. 태공망 여상은 세월을 낚았다고 하지만 지금의 중국인들은 돈을 건지는 셈이 된다. 그들의 여유와 느긋함, 만만디 정신은 자본주의의 도입과 함께 빠른 모습으로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