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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기차표만 구하면 여행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by 깜쌤 2005. 6. 2.


      <경와차 내부 하포의 모습 - 배낭여행자들은 장거리 이동의 경우, 보통 이정도 차를 탄다>

 

곤명 역 앞에서 택시를 내리니 광경은 낯이 익다. 한번 와 본 장소이므로 조금은 익숙한 거리 풍경이다. 곤명역은 곤명시내 중심거리 중의 하나인 북경로(北京路) 끝자락에 있다. 역 청사를 지금 새로 신축하는 중이므로 역 광장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온갖 종류의 가방과 배낭을 이고 지고 등에 맨 인간 군상들이 임시 개찰구를 향해 거대한 물결을 이루어 밀려가고 있었다.

역 광장 바로 맞은편 골목에 자리잡은 금교반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역 앞이라고 하면 좀 수상스런 냄새가 나는 특별구역인 경우가 많지만 곤명역 앞 부근은 온통 버스 정류장으로 이루어졌다는 느낌이 강하다.

여기에서도 버스가 출발하고 저쪽에서도 버스가 출발하고 다음 골목에서도 버스가 그 다음 골목에서도 버스가 쏟아져 나오니 어디에서 무슨 버스가 출발하는지 종잡을 길이 없다. 교통신호는 길을 건너는 엄청난 군중들에 의하여 철저히 무시되므로 신호를 지키는 사람이 이상해진다.

무질서의 극치를 이루는 군중을 헤치고 배낭을 맨 우리들은 목표로 삼은 허름한 호텔에 찾아가 방을 구했다. 침대 3개가 놓여있는 욕실 딸린 방을 120원에 묵기로 했다. 120원이라면 우리 돈으로 18,000원이다. 그 정도는 헐한 가격이 아니다. 한사람 앞에 40원씩 내면 되지만 중국에서 우리 돈 6000원의 가치는 먹는 음식에 견주어 본다면 굉장하다고 볼 수 있다.

큰 배낭을 방에 두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매표소는 북경로에서 보아 왼쪽, 그러니까 기차에서 내리는 손님들이 나오는 집찰구 부근에 자리잡고 있었다. 매표소 앞엔 철망이 쳐져 있고 입구는 자그맣게 나 있다.

속에 들어가 보니 창구마다 엄청나게 긴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비교적 짧은 줄을 골라 줄을 섰다. 미리 준비한 종이에 다음과 같이 써서 창구 직원에게 건네 주었다.

"1) 七月 三十日 桂林 硬臥票 三長. 或 無, 何日OK!
(7월 30일 계림 경와 침대표 3장. 없을 경우엔 어느 날이라도 오케이)

2) 張家界 車票 可能?"
(장가계 표도 구할 수 있을까?)

투명한 유리 아랫부분으로 밀어놓은 메모종이를 가지고 컴퓨터 검색을 하던 여직원은 장가계 표는 없다고 써 보여준 뒤 내일 계림행 차표가 있다고 알려 준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장가계 표는 처음부터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놀랄 일은 아니지만 내일 분 계림행 차표가 있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어설픈 필담(筆談) 끝에 중포 1장, 상포 2장의 침대표를 구할 수 있었다.

역무원이 그런 표만 있다고 하므로 감지덕지하고 주는 대로 구할 수밖에 없다. 중표 상포라고 하니 이해가 안 될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잠시 설명을 해 보기로 한다. (바로 아래 사진 밑으로 글이 계속된다. 중국 가실 분들은 이 정도는 꼭 알고 계셔야 한다. 안그러면 엄청 고생한다.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중국에서 이정도 시설의 이런기차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 사진은 한국의 무궁화호 내부. 시골 갈때 애용하는 기차이다. 무궁화중에서 어떤 것은 역마다 선다>

우린 기차라면 보통 오픈(open)된 공간으로 이루어진 객차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건 우리나라 이야기고 중국은 그렇지가 않다. 워낙 큰 나라이고 장거리 여행객이 많으므로 기차도 침대차를 비롯하여 별의별 모양이 다 존재하는 것이 된다. 보통의 장거리 여행객이 주로 이용하는 것은 침대차가 되기 마련이다.

침대차라고 해서 달랑 한 종류만 있는 게 아니다. 먼저 좀 고급스런 것으로는 연와(軟臥)침대가 있다. 이름그대로 부드러운 침대이므로 자연히 요금이 비쌀 수밖에 없다. 그 밑 수준으로는 경와(硬臥)침대가 있는데 이는 말 그대로 딱딱한 침대차이다. 요건 연와보다는 요금이 싸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장거리 여행객은 이걸 쓴다.

많이 애용한다는 말은 결국 그만큼 표 사기가 어렵다는 말이 된다. 경와라고 해서 다 값이 같은 게 아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이렇다. 먼저 사람이 6명 들어갈 만한 초대형 라면 상자를 생각하자. 그 상자의 한쪽 앞쪽을 도려내서 없애버린다. 이번에는 상자 안 양쪽에다가 마주보고 침대를 만들어 붙인다. 그 침대를 3층으로 해서 붙이면 한 상자 안에 6개의 침대가 생긴다.

이런 침대 6개들이 칸들이 10개 정도 연속되어 붙어있는 것이 침대차이다. 이때 제일 위 침대를 상포(上鋪), 가운데를 중포, 아래를 하포라고 이름 붙인다. 상포는 가장 위에 붙어있으므로 오르내리기가 어려워진다.

거기다가 천장 바로 밑에 붙어있으므로 유리창이 작게 보이게 되어 전망도 좋지 않으니 자연히 값이 싸진다. 그렇다면 당연히 제일 편하고 오르내리기 쉬운 하포 값이 비싸지게 된다. 차표를 구할 때 하포는 빨리 매진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어지간하면 고집부리지 말고 역무원이 주는 대로 차표를 구하는 게 현명하다.

내 맘에 드는 것만 고집하면 한 도시에 붙잡혀 있을 가능성이 커진다. 일행이 네 명이 될 경우 차표가 3장뿐이라면 당연히 전체가 못 움직이게 된다. 그러므로 입맛에 맞는 떡을 고르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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