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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유비는 제갈량에게 진 것이다?

by 깜쌤 2005. 5. 22.

 


                                                      <두보초당 앞 경치>

  

두보의 호는 소릉(少陵)이고 별칭이 자미(子美)인데 하남성(河南省)사람이다.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불렸으며, 또 이백(李白)과 병칭하여 이두(李杜)라고 일컫는다.


 어린 시절부터 시적인 재능이 뛰어나 시를 잘 지었으나 과거에는 계속낙방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백 같은 대시인을 알게 되었고 후에 당의 수도였던 장안(長安 오늘날의 서안)으로 나왔으나 빛을 보지 못하고 불우하게 살았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의 나이 44세 때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반란군에게 포로가 되어 장안에 갇혀있기 1년,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그는 관직에 오르게 된다. 그러다가 성경 출애굽기의 이집트가 당했던 정도의 대기근을 만나 48세에 벼슬을 버린 뒤 식량을 구하려고 처자와 함께 사천성 성도(成都)에 잠시 정착하여 살다가 나중에 양자강 부근에서 방랑을 계속하였는데, 배 안에서 병을 얻어 죽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두보는 널리 칭송을 받았는데 고려시대의 이제현(李齊賢) ·이색(李穡) 같은 분들에게 크게 영향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 성종(成宗) 때는 그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두시언해 杜詩諺解)를 간행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그의 시는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인기가 있다. 사천성에 머물던 두보가 잠시 마음의 안정을 찾아 시작생활에 몰두하던 유서 깊은 장소에 가꾸어둔 사적지가 바로 두보초당이니 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번 다녀볼 만 하다.  

  


                                       <두보초당 앞 자전거 보관소> 

  

♠ 유비는 제갈량에게 졌다?

 

 두보초당을 구경하는 동안 잠시 옛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를 깨운 것은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굵은 빗줄기였다. 여긴 비가 잦다. 밤에 비가 오면 아침에는 날이 개고 오전에 맑았다 싶으면 오후에는 빗방울이 뿌린다는 식이다.


 "촉견폐일( 蜀犬吠日 )"이라는 말이 있다. '촉 지방의 개는 달을 보고 짖는다'는 정도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 촉 지방은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흐린 날과 비오는 많아서 해를 좀처럼 볼 수 없기에, 어쩌다가 해가 나타나면 그것이 신기해서 개들이 일제히 짖어댄다는 이야기에서 이 말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백이 지은 시에는 '촉도난(蜀道難)’이라는 말이 나온다. '촉으로 가는 길은 험하다'라는 뜻 정도가 되리라. 중원에서 촉 나라 가는 길은 하늘에 오르는 일보다 더 험난하다고 노래했을 정도로 촉은 험한 산지로 둘러 쌓인 곳이었다. 서안에서 성도로 가는 기차 속에서도 확인한 사실인데 확실히 사천성의 성도(省都)인 성도(成都)로 가는 길은 험하다.


 성도 시에서 버스를 타고 4, 5시간 정도만 가면 6000, 7000미터 급의 산이 나온다. 사고랑산(四枯 山)이나 공가산(공가山)이 그것인데 그런 험하고 높은 산에 둘러 쌓여 있는 곳이므로 비가 자주 오는 것이지 싶다.  

 

                                                              

 

 이런 험한 산에 둘러 쌓인 분지이므로 천하의 요새가 되는 데다가 토지가 비옥하고 산물은 풍부하여 예로부터 능히 사나이 대장부의 원대한 웅지를 펼칠 만한 장소로 손꼽혔지 싶다.

 

그러기에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항우(項羽)에게 패한 후 촉 땅으로 들어가 기회를 노렸고 제갈량도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유비를 설득하여 형주를 떠나 촉으로 들어가기를 권했던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