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두보를 모른다면.....

by 깜쌤 2005. 5. 21.


  

♠ 두보(杜甫)를 모르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하던데.....

  

 자전거를 타고 민강 강변을 달린다. 성도에서 서북쪽으로 자리잡은 거대한 산악덩어리를 민산(珉山)이라고 부른다. 그 사이를 헤집고 노도 같은 물줄기를 뿜어 내리는 물살 빠른 강이 바로 민강이다. 민강의 지류인 금강(錦江 진장)이 시내를 가로지르는데 물살은 급하고 빠르다.


 우리 같으면 벌써 시내를 가로지르는 래프팅 코스를 개발해서 동동 떠내려가고 둥둥 떠내려가고 난리야단법석이 났으련만 그렇게 돈에 밝은 중국인들이 아직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는 틀림없이 그럴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성도 시내 래프팅을 한다는 여행사 광고가 나오게 되면 이는 중국인들의 삶의 질이 우리를 추월했다는 증거가 되지 싶다. 하여튼 천혜의 조건을 지닌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왜 그런 밉상스런 녀석들에게 놀라 자빠질 만한 엄청난 복이 가는지 난 이해가 안 된다.


 구정물 흐르는 금강 줄기를 따라 고물자전거를 몰고 교통신호를 적당히 무시하며(?) 달리는 자랑스런 4인방 꼬레아노(코리언, 韓國人 한꿔런)들이 있었으니 그 모습도 잘난 사람들이 보았다면 가관이었지 싶다. P형님은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오셔서 별 희한한 장면들을 담았다.


 분명히 작년에 왔던 길인데 헷갈려서 요리조리 골목길을 헤치며 묻고 물어서 도착하고 보니 안내원이 여기가 틀림없는 두보초당(杜甫草堂) 앞이라고 우긴다. 아, 일년만에 엄청나게 바뀌어 버려서 작년의 기억을 가지고 다닌 내가 졸지에 촌놈이 되었다.


 두보초당 앞을 깨끗이 정리하여 공원을 만들었는데 역시 중국인들의 통큰 스타일답게 규모하나도 거창하게 조성했다. 인공적으로 물길을 새로 내어 물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한 것은 기본이고, 공원 안에 여러 가지 화초를 심어 대나무 숲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두었다.

 

 


                                                  <두보초당 안의 한장면>

 
 입장료가 아까워진 나는 세 사람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공원 벤치에 앉아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쓰다말고 피로에 지친 나는 잠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만다. 한문 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 '이 한시를 읽고 해석하시오...'.라는 문제인데 나 혼자서 유일하게 99점을 받았다.


 

 딱 한 문제가 시험지 위에 달랑 매달려 있었는데 그 시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완전 꽝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리버리한 내가 웬일로 최고 점수를 받아 우리 한문 선생님의 총애를 잠시 독차지하는 계기가 된 한시! 운명의 그 시를 소개한다.

 

 

                                           春望          (춘망)

 

國破山河在    국파산하재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변함 없고


城春草木深    성춘초목심         봄이 온 성터엔 초목만이 그득하네


感時花淺淚    감시화천루         세상사 생각하니 꽃만 봐도 눈물나고


恨別鳥驚心    한별조경심         한 많은 생이별에 새소리에도 놀라는데


烽火連三月    봉화연삼월         석 달을 연이어서 봉화가 피어오르니


家書抵萬金    가서저만금         집안 소식 담은 편지만 기다리는구나


白頭搔更短    백두소경단         흰머리 긁을수록 더욱 드물어져(짧아져서)


渾欲不勝簪    혼욕불승잠         이제는 비녀조차도 꽂을 수가 없구나

 

  

 약간 의역한 부분도 있지만 대강 그런 뜻이다. 내가 보기에도 두보의 시는 인생을 관조한 듯한 느낌을 준다. 두보와 쌍벽을 이루는 이백(李白)의 시풍이 호쾌한 출출문장이라면 두보의 시는 고뇌 속에서 다듬어진 의미 깊은 철학적인 문장이라고 이야기한다. (맞는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