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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24 조지아, 아르메니아, 터키

사도 빌립의 순교를 기념해서 지은 빌립 순교당을 찾아가야지요

by 깜쌤 2024. 10. 10.

석회질이 쌓여 만들어진 하얀 언덕 부근에 서서 보면 너른 계곡이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오른쪽(지도에서는 서쪽 방향)으로 기차를 타고 가면 4시간 후에는 에페수스(에베소) 유적지가 있는 셀추크(셀축)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할 겁니다. 

 

 

왼쪽으로 가면 데니즐리가 나타나는 거죠. 파묵칼레 마을이 보이네요.

 

 

판석으로 덮인 길 안쪽은 출입금지구역이죠.

 

 

그걸 모르고 슬쩍 들어갔던 우리는 튀르키예 여자 경찰에게 고개 숙여 사과해야만 했었습니다. 

 

 

나이 먹고 그런 실수를 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거죠 뭐.

 

 

예전에는 누구나 막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만 사실 그런 행동은 만행이나 다름없었죠.

 

 

히에라볼리 고대 도시의 북쪽 문이 등장했습니다. 

 

 

아무리 무너진 도시 흔적이라고는 하지만 정문을 통해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어요?

 

 

바로 이 문입니다. 

 

 

문을 지나면 중심 도로가 남쪽으로 뻗어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들어갑니다. 중심도로의 폭은 14미터나 되었다고 하네요.

 

 

우린 지금 4번 위치에 서있는 겁니다. 16번이 빌립 순교당 건물이 있는 곳이고요. 7번은 아고라 터였습니다. 

 

 

도시 규모가 예전에는 어마어마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정도의 도시 규모를 가졌다면 당시 거주 인구는 얼마였을까요? 연구자들은 십만 명 내외가 거주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네요.

 

 

고대도시 구역 출입문 안에 들어와서 바깥쪽, 그러니까 네크로폴리스 쪽을 본 모습입니다. 

 

 

아고라는 사라지고 중심도로 쪽으로 면한 바깥 벽 정도만 남아있었습니다. 

 

 

나는 대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무너진 흔적이 이 정도라면 대단한 시설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남쪽 문이 보이네요. 이 도시는 기원전 기원전 190년경 페르가몬 왕국의 4대 군주였던 에우메네스 2세가 건설했다고 합니다. 

 

 

그가 페르가몬 왕국을 통치하고 있을 때 로마를 침공했던 카르타고한니발 장군도 활동하고 있었지요.

 

 

히에라폴리스(히에라볼리) 남문 부근에 잠시 서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가지고 있어야 이런 도시를 건설할 수 있을까요?

 

 

비잔틴 제국의 초기, 그러니까 동로마 제국이 여기를 통치할 때도 도시는 번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밖으로도 길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남아있는 흔적으로 미루어보건대 열주가 줄지어 서있던 고대에는 위용이 대단했을 겁니다. 

 

 

파묵칼레 온천에서 물을 끌어왔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모터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자연적인 경사를 활용해서 물을 흐르게 했을 겁니다. 

 

 

번영을 계속했던 히에라볼리는 1354년의 대지진을 깃점으로 해서 쇠락하고 맙니다. 

 

 

이런 곳은 신전터였을까요?

 

 

신관들은 모두 다 사라지고 없고 핏빛같이 빨간 개양귀비 꽃들만이 가벼운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하수도 위를 걸어갑니다. 

 

 

제가 하수도라고 함부로 짐작해서 표현했지만 어쩌면 온천수를 도시로 끌어들이던 수로였을지도 모릅니다. 

 

 

수로 옆은 풀밭으로 변해버렸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토사가 쌓여 지표면이 높아져버렸을 겁니다. 

 

 

수로 위를 걸어가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빌립(=필립) 순교당을 찾아가는 겁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 이름이 아마도 필립이었을 겁니다. 한자로도 표기 가능한 이름이니 상당히 매력적인 이름이라고 여깁니다. '반드시 필'에다가 '설 립'자를 쓰면 되거든요. 우리가 잘 아는 김삿갓 선생을 김 립이라고도 하잖아요? 그때는 '삿갓 립(笠) '자를 씁니다. 

 

 

또 쓸데없는 헛소리를 했네요. 멀리 극장 흔적이 보입니다. 

 

 

돌틈 사이로 수로 밑을 살펴보았습니다. 제법 깊더군요.

 

 

극장 터로 이어지는 길로 올라섰습니다. 

 

 

돌길 위로 육지 거북 한 마리가 올라왔네요.

 

 

우리는 돌길을 내려서서 다른 길로 접어듭니다. 

 

 

이 길 양쪽으로도 건물이 서있었을 겁니다. 

 

 

전성기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이 도시의 현재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통로에 가득했던 풀을 베느라 예초기를 사용했던 일꾼들은 잠시 쉬러 가버린 듯합니다. 

 

 

4월이어도 날씨가 살짝 덥더군요.

 

 

바위 이끼가 가득한 걸 보면 여기 생태계는 아직도 건강한 모양입니다. 

 

 

길을 오르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 위에는 눈이 묻어있었습니다. 

 

 

꽃집에서 볼 수 있는 귀한 무늬 식물이 숨어있었습니다. 

 

 

언덕 위에 빌립 순교당이 슬쩍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써야겠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