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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기념 공원에서 매화 향기를 맡으며 걸었어

by 깜쌤 2024. 3. 29.

3월 14일인데 벌써 매화가 끝물이었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대구에 갔었어.

 

 

대구 시내 한가운데 있는 국채보상운동 기념 공원의 매화를 보기로 했어.

 

 

끝물이라고는 해도 홍매화, 백매화가 어우러져서 멋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어. 

 

 

공원 전체에 매화 향기가 그득했어.

 

 

노란 산수유도 지지 않고 잘 견뎌내고 있었어.

 

 

1907년부터 시작된 국채(나랏빚) 보상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되었어.

 

 

그 사건을 기념하는 공원인 거야.

아래 글을 잠시만 보기로 해.

 

이로써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7~8월에 절정을 이룬다. 보상운동에는 노동자와 농민, 부녀자, 군인, 인력거꾼, 기생, 백정, 영세 상인, 학생, 승려 등 모든 계층이 참여했으며, 특히 가난한 하층민이 주축을 이뤘다. 담배를 끊어 저축을 하고, 금은 비녀와 가락지 및 노리개를 내놓고, 심지어 머리털을 잘라 팔기도 했다. 탈환회는 반지를 빼고, 감선회는 반찬을 줄였다. 일본에서 유학하는 학생 800여 명은 담배 값을 모아 보내왔다. 급기야 고종도 “국채보상의 일로 인민이 담배를 끊고 대금을 모집한다는데, 짐도 불가흡연(不可吸煙)”이라며 담배를 끊자, 여러 대신들도 이를 따랐다.

 

위 글의 출처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63XX66000095

 

 

매화꽃과 향기를 즐기려는 시민들이 제법 많았어.

 

 

국채보상운동의 여파는 외환위기 때도 이어져 온 국민이 나서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시선을 확 잡아당기는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어.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휘늘어지는 수양매화를 발견한 거야.

 

 

나는 한동안 수양매화나무 곁을 서성거렸어.

 

 

별서 잔디밭에 한그루 심어두기 위해서 예약을 해두었는데...

 

 

아직까지 심어두지를 못했어.

 

 

수양 매화 가지에 앉아있는 새를 찾을 수 있다면 그대는 슈퍼 아이(eye)를  가진 거야.

 

 

이젠 찾았지?

 

 

커피를 마시러 가다가 2.28 기념 중앙공원을 지나게 되었어.

 

 

소녀상이 있더라고. 가슴이 끓어올랐어.

 

 

기구한 운명을 살아버린 할머니를 이용해 돈을 벌고 더 나아가 국회의원까지 하며

호의호식한 인간들은 뭐지?

 

 

도대체 뭐야? 커피숍에서 마시는 커피 맛이 처음 한동안은 쓰기만 했어.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