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이었어. 김종수 화백께서는 자기 아뜰리에에서 커피 한잔하고 가라고 권해 오셨어.
거절하면 안 되잖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창가 의자에 가서 앉았어.
김종수 님은 그림을 그리는 화백이시니 개인 아뜰리에를 가지고 있지 않겠어?
그분 호의로 여기에 몇 번 올라와 보았지.
내가 서재를 한없이 사랑하듯이 김 화백에게는 그분이 사랑하시는 아뜰리에가 삶의
터전이자 공간이라고 생각해.
김종수 화백께서 직접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린 뒤 손수 대접하시는 거야.
"김 화백님!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별서로 가는 길목에 있는 화실이어서 그 분과 인연을 맺게 된 거야.
나는 이런 공간이 좋아.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가지 일에 몰두한다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해.
나는 서양사나 비교 언어학, 비교 문화학 같은 학문을 해보고 싶었어.
내가 언어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예전엔 까맣게 모르고 살았어. 성장기에 해당했던
학창 시절에 내가 그런 것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딱 한 분 계셨어.
가정 형편 때문에 내가 교육대학에 진학하려는 걸 극구 말리셨던 분이었지. 역사를 전공하신
김인한 은사님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셨어.
고등학교 3학년 겨울, 대학 진학 원서를 쓰던 날, 담임 선생님이 출장을 가시게 되어 다른 반 3학년
담임이셨던 그분이 대신 대학교 지원 원서를 써주시게 되었던 거지.
"너는 교육대학 가게 되면 네 인생을 망치게 된다. 그러니 교육대학 원서를 여기에 놓아두고
##에 가서 @@ 대학교 원서를 사가지고 오너라. 거기는 네 실력으로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
그 순간이 내 인생의 변곡점이었었는데 말이지. 나는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거야.
망해버린 집안이라 내가 빨리 돈을 벌어서 동생들 공부를 시켜야 하는 처지였으니
내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거지.
교수가 되어 이런 공간에 책을 가득 쌓아두고 자주 정독하며 남이 쓴 논문도 읽어본 뒤, 관련 글을
쓰고 평생토록 강의하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모든 게 헛 것이 되어버렸어.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잠시 상념에 젖어 그런 생각을 해보았던 거야.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어.
아침부터 남의 집 귀한 공간에서 이게 무슨 망발이지?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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