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파 기념관 부근은 깔끔했어.
나는 영랑생가로 갔어. 기념관 바로 옆이니까 이동하는 데 부담될 게 없었어. 입구는 어렸을 때 많이 보았던 그런 문이었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이 시도 자주 외웠었지.
선생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작품은 1934년에 발표되었다고 해.
약 백여년 전 집의 규모가 이 정도였다면 선생은 그런대로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일본 유학까지 했겠지.
세밀하면서도 단정하게 손을 보았더라고.
이런 분위기에서 자랐기에 서정시를 많이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어제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주사를 맞는 날까지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이 애송한다는 백 편의 시를 읽었어.
거기에도 영랑 선생의 시가 수록되어 있었지. 문간채가 정면에 보이더라고.
문간채에 발을 올렸더니 안채가 보이는 거야.
문간채에도 쪽마루와 부엌이 마련되어 있었어.
이 정도 규모같으면 머슴들을 데리고 살았을 거야.
문간채 한쪽으로는 여러 가지 농기구들이 정리되어 있었어.
집안에 우물이 있었어. 마당에 우물이 있는 집은 복 받은 집이었지.
예전 시골 사람들은 대부분은 마을 공동 우물이나 자연적으로 흐르는 개울을 사용했었어.
안채 규모도 작은 게 아니었어.
문간채가 이 정도 규모였다면 지역에서 알아주는 부농이거나 지주라는 소리를 들었지 싶은데....
사랑채는 따로 있더라고.
장독대의 모습이야.
누이! 가슴 뭉쿨해지는 낱말이지.
나는 안채의 마루와 방을 보고 깜짝 놀랐어. 초가집이지만 이런 시설을 할 수 있었다니....
이렇게 운치 있는 집은 흔치 않아.
정말 보기 힘든 집이지.
뒤란의 규모도 컸어. 더구나 뒤란 쪽으로 내어놓은 툇마루를 보고 나는 거듭 놀랐지.
옆으로도 마루를 내었더라고.
이런 데서 자라야 서정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이 될 수 있지 싶어.
모란이 가득한 화단도 보이더라고. 멀리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야.
농가 규모도 규모였거니와 집안 구조가 아주 단정했어.
이런 집은 보기 힘들었는데 말이야.
잘 손질되어 있었어.
이런 마루에 앉아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복 받은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이젠 사랑채로 가봐야지.
사랑채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와서 안채를 본 모습이야.
사랑채도 규모가 있었어.
초가 대청 마루에 이렇게 멋진 한국화가 갈려있는 집은 처음 본 것 같아.
사랑채 뒤란도 규모가 컸어.
사랑채 마당 정원은 일품이었어.
이런 시를 남길 수 있다는 건 우연이 아닌 것 같아.
사랑채 마당 한켠에 조성된 쉼터에는 정감이 넘쳐흘렀어.
노란색 건물이 시문학 기념관이지.
사랑채 출입문이야.
영랑 생가터가 이렇게 멋진 줄은 미쳐 몰랐어.
터를 더 사넣고 손보며 꾸몄을 수도 있겠지.
대문을 나서면 관리인이 있는 건물이 나올 거야.
바로 이런 식으로 말이야.
다시 밖으로 나왔어. 시문학 기념관 앞이 되는 거야.
돌아보면 이런 식이지.
영랑 생가 앞 골목은 김현구 시인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꾸며 놓았더라고.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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