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어.
대합실 안에는 굳이 들어가보지 않았어.
벌써 오후 3시가 되었기에 뭐라도 먹어야했어.
플랫폼으로 이어지는 구내 건널목을 지나치자 낙동강이 보이기 시작했어.
주민들이 먹을 것을 판매한다는 매점들이 있었어.
하지만 오늘처럼 손님없는 날에 문을 열어두었겠어?
나는 쉼터를 겸한 의자에 찾아가서 앉았어.
현지인들은 아무도 없었어.
나는 강물을 바라보며 배낭속에서 먹을 것을 꺼냈어.
집에서 먹다가 남은 치킨 여섯조각과 오렌지 두개가
점심 겸 저녁이었어.
영주에서 철암까지의 철도가 완공된 것은 1955년이야.
철도에 근무하셨던 아버지께서 여기 승부로 발령받아 온 것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몰라.
내가 태어난 곳은 탑리이며 거기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은 적이 있으므로
아마 서너살 때 여기로 이사온것 같아.
큰누님이 여기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녔다고 했으니까
적어도 몇년은 살았던 것이 확실해.
간단히 요기를 한 뒤 천천히 일어나 걸었어.
세평 하늘길은 다음에 한번 더 와서 걸어볼 생각이야.
나는 개울로 내려갔어.
개울에는 다리가 놓여져 있고 건너편 작은 골짜기안에 쉼터가 있더라고.
개울로 내려간 나는 철교를 발견했어. 터널에서 기차가
나오고 있었어.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즉석에서 60년 전의 비밀이 풀려버린 거야.
이쪽이 석포가 아닌 분천 방면이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재확인한 거야.
나에겐 그게 엄청 중요한 사실이었어.
개울에 자라는 버드나무에는 버들개지가 달려있었어. 버들개지는 버드나무의 꽃을 말해.
초등학교 시절엔 너무 배가 고파서 봄철마다 많이 따먹었어.
갓 물이 오른 연한 가지를 끊어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했지.
틀림없이 개울에 나가서 놀았을 터인데 그런 기억은
왜 없는지 모르겠어.
골짜기 쉼터야. 예전에는 저기에서 현지인들이 나물같은 것을
팔았던가봐.
자갈밭을 걸어서 철교쪽으로 가보았지.
건너편 절벽 밑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어.
철쭉도 자라고 있었어.
그래, 이 철교야.
방안에서 보이던 철교가 바로 여기였던 거야.
이 철교로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누나가 집에 들어왔었어.
그 누님이 이제 칠십이 넘었지.
이 부근 어딘가에 철도관사가 있을 거야.
그렇게 오고 싶었는데...
사는게 뭐가 그리도 급했을까?
계곡이 이어지고 있었어. 양원역까지 거리가 5킬로미터라면
걸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이제 기차역쪽으로 올라가야지.
나는 승부역쪽으로 이어지는 작은 비탈길을 올라가며
철교쪽을 확인해보았어.
조금 더 오르자 철도관사 스타일의 건물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어.
그런데 어느 집에서 살았는지 도저히 모르겠더라고.
워낙 오래전의 일이어서 그랬나봐.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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