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를 도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어. 세상에나!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몰릴 것이라고 예상을 했기에 일부러 주말을 피해 평일에 왔는데 이게 뭐야? 너른 입구에 엄청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밀려 들어가고 밀려 내려오고 있었던 거야.
여기가 아크로폴리스의 정식 입구나 마찬가지야. 입장권이야 저 밑에서 파는 것이지만 언덕 정상부에 이르는 길은 여기가 공식 통로임과 동시에 유일하거든. 그러니까 여길 단순한 성채라고 여긴다면 출입구이며 유일한 퇴로가 되기도 하는 거지.
도시 국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운 사람이 페리클레스라고 했잖아? 계단 위쪽에 보이는 기둥으로 이루어진 것이 프로필라이아라는 이름을 가진 정식 입구야.
프로필라이아의 위용은 대단했어. 기원전 437년부터 기원전 432년 사이에 건축되었다고 전해오는 구조물인 거지. 신전으로 들어가는 대문격이야.
프로필라이아에 이르기 바로 직전 계단 양쪽에 두개의 돌 구조물이 서 있어.
이제 대문으로 들어가는 거야. 가만 있어도 거의 떠밀려 들어가는 수준이었어. 두줄로 늘어선 주랑의 기둥들은 이오니아식과 도리아식이라고 해. 대문 양쪽으로도 두개의 건물이 붙어있지.
이 구조물을 책임진 건축가는 므네시클레스였다고 해. 하지만 우리가 착각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어. 총공사 책임자는 페이디아스였다는 사실이야.
기둥들을 찍어보았어. 사진 찍는다고 함부로 머뭇거리다간 뒷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으며 원성까지 들을 수 있으니까 똑딱이 카메라로 마구 셔터만 눌러댔어. 누구라도 조금만 머뭇거리면 곳곳에 배치된 안내원이 빨리 나아가라고(Go! Go!) 성화를 부렸어.
많은 사람들은 프로필라이아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입장하고는 눈에 익숙한 파르테논 신전만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아니라고 봐. 돌기둥 사이로 마침내 파르테논 신전이 그 위용을 드러냈어.
바로 저 건물이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도 숱하게 보았고 사진과 동영상에서도 자주 보아왔던 그 건물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야.
플로필라이아를 통과한 뒤 곧바로 파르테논 신전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 아테나 니케 신전을 찾아서 일단 눈으로 확인해두었어. 니케 신전의 설계자는 칼리크라테스였어.
나도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이 파르테논 신전으로 눈이 먼저 가게 되더라고. 보수 보강 공사가 진행중이었어. 22년 전에 왔을 때도 그랬는데 말야.
사람들이 조금 뜸해진 틈을 타서 파르테논 신전의 정면을 찍어보았어. 기둥들의 배치와 설계상의 교묘함을 내가 말로 자세히 묘사한들 그게 무슨 소용 있겠어?
파르테논 맞은 편, 그러니까 모나스티라키 구역쪽으로 자리잡은 건물이 에렉테이온(=에레크테이온)이야. 여기까지 올라왔다면 절대 놓쳐서는 안될 건물이지.
나는 파르테논 신전의 오른쪽으로 돌아갔어.
그러면서 고개를 다시 돌려 니케 신전을 재확인해두었던 거야. 돌로 된 언덕 위에 돌덩어리들이 마구 흩어져 있었어.
니케(=나이키) 신전의 프리즈에는 기원전 479년에 벌어졌던 플라타이아 전투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고 해. 니케 신전은 아크로폴리스의 감시탑 구실을 하면서도 니케 여신에게 바친 구조물이라고 하는데 그 유명한 테세우스의 아버지 아이게우스 왕이 절벽에서 뛰어내렸다고도 전해지는 곳이야. 물론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다른 전설도 있지.
이 멋진 엄청난 건물을 건설하자고 주장하며 정치적인 결단을 내린 사람이 페리클레스야. 그는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뛰어난 미남으로도 유명했지만 무엇보다 차분한 성품과 결단력, 그리고 놀라운 언변과 정치력을 지녔던 인물이었어.
절벽 쪽으로 다가간 나는 절벽 아래쪽으로 펼쳐진 아테네 시가지를 두루 살펴보았어.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이 눈에 들어왔어.
멀리 바다쪽 경치도 살펴두었어. 언덕 밑에 보이는 사각형의 건물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지. 예전에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멋진 현대식 건물을 지어서 이사 가버린 거야.
바로 이 건물이 예전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지. 이젠 입장도 금지되어 있어. 거긴 나중에 한번 더 소개할 게.
나는 한때 서울대학교 삼대 입담꾼 가운데 한 분이었다는 유 누구누구씨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참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이야. 우리 문화유산을 깎아내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잘한 것에 너무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여 과장했다는 느낌도 받은게 사실이었어.
만약 그 분이 이런 기둥들에 관한 글을 쓴다면 어떤 표현을 쓸지 정말 궁금해. 내 말은 있는대로 냉철하게 보자는 거야.
고대 아테네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서려면 꼭 당선되어야할 직책이 있었어. 스트라테고스라는 관직이었는데 아네네의 행정구역인 트리부스에서 매년 한명씩 뽑았어. 그 트리부스가 아테네에 10개 정도 있었지. 페리클레스는 33세 때 자기 트리부스에서 처음 당선된 후 32년간 연속 당선된 기록을 세운 사람이었어.
소포클레스라는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을 거야. 비극작가로 유명한 분이지. 그도 페리클레스와 같은 해에 다른 트리부스에서 스트라테고스에 당선되었는데 그 다음 해에는 낙선했어. 하지만 페리클레스는 그 후로도 연속 당선된 사람이니까 정치적인 역량을 짐작해볼 수 있을 거야.
자기 선거구인 트리부스에서 수십년을 두고 연속 당선되었다면 정치계의 거물이 되어 본인이 지닌 영향력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었겠지. 그런 그가 아테네 시민들을 설득하여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멋진 신전을 재건축하자고 제안했던 거야. 절벽 밑으로 아스클레피오스 신전터가 보여.
디오니소스 극장도 바로 밑에 드러나있어.
들어오면서 멀리서만 바라보았던 두개의 코린트 식 기둥도 그 모습을 나타냈어.
제우스 신전터와 근대 올림픽 경기장도 보이더라고.
이런 기둥들을 이 절벽 밑에 왜, 무엇때문에 어떻게 세웠을까?
가만히 따져보면 모든게 경이로울 뿐이야.
고대 그리스인들 가운데서 아테네 시민들은 아테나 여신이 자기들을 지켜준다고 믿었어. 그랬기에 도시 이름도 아테네 아니겠어?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는 예전부터 아테나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이 있었다고 해.
처음에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던 모양이야. 올림피아에는 제우스 신전이 있었고 델포이에는 아폴론 신전이 있었는데 거기에 비하면 아테나 신전은 갖다대기조차 민망한 수준이었던 것 같아.
나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있는 구 박물관 앞에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어. 여기 오기전에 그리스 고대사에 관한 책을 몇권 읽어두었던 게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고 의미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의 아테나 신전이 다른 도시국가들의 신전과 비교하면 왠지 초라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도시 국가들 중에서 최강자로 떠오른 아테네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을까?
피레우스 항구에서조차 보이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거대한 신전을 짓는다는게 페리클레스의 구상이었을 거야. 한번의 낙선도 없이 자기 트리부스에서 32년간 연속으로 스트라테고스에 당선되었다는 자신감이 그런 구상을 하게 했을까?
아테네 신전은 기원전 480년에 있었던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불타고 난 후 33년간 방치되어 있었던 거야.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부와 명예와 자존감을 가지게 된 아테네 시민 집회는 페리클레스의 제안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었고 페리클레스는 천재적인 조각가 페이디아스에게 건축 총책임을 맡긴 거지.
페리클레스는 자기 애인이었던 아스파시아와 공사 현장에도 자주 나타났다고 전해져. 그렇다면 내가 걷는 이 길을 페리클레스와 아스파시아와 페이디아스도 내디뎠겠지.
나는 전망대로 다가갔어.
어때? 아크로폴리스 동쪽끝에서 서쪽으로 본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이야.
왼쪽의 파르테논 건너편 오른쪽 끝머리에 보이는 건물이 에레크테이온이지.
동쪽 끝 전망대에 붙어선 나는 아테네 시가지를 살폈어.
북동쪽으로는 리카비토스 언덕이 다가왔어.
그렇다면 이제 아테네 시가지를 거의 다 살핀 셈이야.
이 정도면 되지 않았겠어?
우린 파르테논 신전의 겉모습 기둥만 훑어본 정도에 지나지 않아. 신전 내부 시설은 상상할 수밖에 없어. 건물 속에는 아테나 여신상이 우뚝 서있었다고해. 아테나 여신상은 노란 바지 입은 체격 좋은 저 백인여인처럼 당당하게 서 있었겠지.
어리
버리
'배낭여행기 > 19 유럽-동남부:발칸반도 여러나라(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림픽 경기장에서 (0) | 2019.12.06 |
---|---|
아크로폴리스에서 2 (0) | 2019.12.04 |
아크로폴리스를 찾아가다 (0) | 2019.11.29 |
모나스티라키와 아크로폴리스를 향하여 (0) | 2019.11.28 |
어두워만 가는 아테네 (0) | 2019.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