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갔던 그날, 여기까지 들어온 사람은 거의 없었어.
그랬기에 이렇게 넓고 고즈넉한 공간을 혼자서 독차지했던 거야.
돌아서서 상류쪽을 바라보았어.
돌아나가야지.
전망대를 겸한 빈터가 보이길래 잠시 내려가보았어.
웬 비석인가 싶었어.
돌에 새겨진 것은 이주자 명단이었어. 더 심하게 말하면 실향민이라고 표현해도 될거야.
내가 아는 이름들이 있었어. 강기태라는 성함은 우리 집 뒤에 살았던 '떠들이상'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아줌마의 아들이 맞을 거야.
장성두! 어쩌면 내가 아는 형의 함자가 맞지 싶어. 어디로 옮겨가서 사시는지 궁금했어.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구마이 마을에 사셨던 분들의 이름이 맞는데.....
그 형님들을 내 눈 감기 전에 한번 만나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돌아나오는 데크 길 위로 나뭇잎이 떨어져 내렸어.
다시 저 다리를 건너가야지.
만감이 교차한다는 진부한 표현이 실감나더라고.
여길 10월 31일에 다녀왔었는데 사실 어제(11월 19일)도 이 부근에 갔었어.
시계를 보았더니 서둘러서 영주로 돌아가야했어.
유년 시절의 내 삶터와 추억어린 곳이 모두 잠겨버린 것이 커다란 슬픔으로 다가왔어.
치매라는 병도 그런 것 같아.
기억이 사라져간다는 것은 비극이잖아?
무심한 관광객들은 '좋다'는 소리만 연신 뱉어내고 있었어.
내 자전거가 난간에 기댄채로 남아있었어.
어느 길을 사용하여 어디로 해서 영주로 돌아갈 것인지를 결심해야했어.
송리원 휴게소와 기프실 마을이 보이는 곳에 다시 섰어.
이 밑 어딘가에서 지서장의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했어. 그게 벌써 오십년도 더 지난 시절의 이야기야.
아까 물살을 헤치며 나아갔던 배가 쓰레기(?)를 포획해서 끌어 오고 있었어.
동막과 점동막을 이어주는 다리가 보이지? 마을들은 이제 다 사라져 버리고 새로 만든 다릿발들이 거인처럼 우뚝 솟아 올랐어.
하얀 모래를 품은 강물이 산과 산 사이를 굽이굽이 감아가며 흘렀었는데....
나는 구마이 마을에서 시낼마을로 이어지는 산길을 넘어갔어. 아래 지도를 봐. DAUM에서 컴퓨터를 통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지도를 클릭해봐. 크게 뜰 거야.
1번 : 무섬마을의 위치 2번 : 영주댐의 위치
3번 : 옮겨세운 평은역(용마루 공원) 4번 : 옮겨간 면사무소, 파출소
5번 : 옮겨간 평은초등학교 위치
노란색 작은 점들 :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 길.
분홍색 작은 점들 : 영주시내로 돌아간 길
평은초등학교 용혈분교장 터에 가보았어. 시낼 마을에 있었는데 지금은 잡초 속에 묻혀 있지.
부근 산에 작은 교회가 있더라고.
나는 주누골(?)로 이어지는 길을 달려 올라갔어.
바로 밑으로 중앙선 예전 철길이 지나갔었지.
주누골과 시낼 마을의 모습이야.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산을 넘어온 거지.
내성천과 영주에서 흘러내려온 서천의 합류지점에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쳐다보았어. 농부가 가을걷이를 하고 있었어. 부근에 무섬마을이 있어.
인생은 말이지, 한번쯤은 살아볼만 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영주역에는 기차시간에 거의 맞추어서 도착할 수 있었어. 자전거를 접어 기차에 실었어. 기차표는 아침에 미리 사두었었지.
남행 열차는 미림 마을 앞을 순식간에 지나쳐갔어. 저기 강변 숲에 소풍을 간적이 있었지. 초등학교 몇학년 때 일인지 모르겠어.
안동 바로 직전의 이하역이야. 은행 잎이 노랗게 물들었어.
이하역 부근의 철도관사의 모습을 다시 확인해두었어. 이제 2,3년 뒤가 되면 이렇게 보는 풍경도 마지막이 될 거야. 새로운 중앙선 철길이 따로 건설되고 있거든.
안동역을 지나 낙동강을 건너가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안동에서 탄 영감들의 추태가 시작되었어. 소중한 여행의 끝자락이 지저분하게 망쳐지기 시작한 순간이었지.
그들 영감님들은 경주에서 내리더라고. 수십년을 살아오면서 나에게 실망감만 가득 떠안긴 그 도시에서 내리더라고. 물론 나도 같이 내렸지. 남이 강제로 안겨준 절망을 안고 말이지.....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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