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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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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9 유럽-동남부:발칸반도 여러나라(完

테살로니키의 아야 소피아

by 깜쌤 2019. 11. 15.


2019년 5월 19일 주일이었어. 그날 테살로니키는 아주 쾌청했어. 밤새도록 쿵쾅거리며 이어지던 비트 강한 음악도 아침 8시경이 되어서야 끝난듯 해. 아, 대단한 사람들이야. 그래도 불타는 토요일을 보낸 젊음들이 부러워졌어.



9시에 다같이 모여 예배를 드렸지. 여행중이라도 예배는 드려야하지 않겠어? 아침 식사는 통밀 샌드위치로 해결했어. 호텔 모퉁이가 빵집이어서 방을 구해오기는 쉬웠어. 물론 ㄱ장로님이 가서 구해오셨지. 


  

오늘은 모두 자유시간을 가지기로 했어. 여행 21일째니까 이제는 어느 정도 내가 하는 여행 방식에 숙달도 되었으니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되 대신 단독으로는 외출하지 않으시도록 부탁을 드렸어.



나는 ㄱ장로님과 함께 시가지 탐색에 나섰어. 일단 이그나시아 거리를 따라 걸었어.



잠시 바닷가로 방향을 틀어 아리스토텔레스 광장에 한번 더 가보았어.



일요일 오전의 광장 풍경이 어떤가싶어 궁금했기 때문이야.



광장 좌우로는 은행과 호텔 그리고 가게들로 채워져 있었어.



비둘기들도 제법 많았어. 사람들이 슬슬 모여들기 시작했어.



아리스토텔레스 선생은 변함없이 같은 자세로 앉아 있더라고.



그는 아테네에서 활약한 철학자 및 교육자로 유명하지만 천하의 아리스토텔레스도 아테네 시민권을 가질 수는 없었어. 도시국가 시절의 아테네는 부모 모두가 아테네 시민권을 가진 자의 자식만이 아테네 시민권을 가질 수 있었지. 그게 고대 아테네의 한계였어. 로마인들은 그런 편협성을 극복했기에 세계적인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게 역사학자들의 평가이지. 


 

이제 그 한계성을 우리 대한민국이 고민해야 할 때야. 언제까지 단군의 후손으로서 배달민족, 단일민족이라는 낡은 타이틀에 매달려 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야. 유능한 외국인 인재를 영입하여 동화시킬 줄 아는 민족에게는 앞으로의 번영이 보장되겠지.  


 

혈통의 순수성에 매달리면 퇴보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명심해야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역사가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어. 인재의 꾸준한 수혈을 게을리하는 조직과 단체와 사회는 필연적인 퇴보가 기다리고 있지.  



이미 우리 사회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와 있어. 선별해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지.



그리스 문명의 쇠락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많아. 근세사에서 그리스가 오스만 투르크에게 눌려 맥을 추지 못했던 원인도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어. 


 

걷다가 보니 아야 소피아 성당 앞부근까지 흘러 들어가 버렸어.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집총자세로 서있는 것을 발견했어. 무슨 행사가 벌어질 모양이었어.



행사장 앞에는 전통 복장을 한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어.



그렇다면 발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봐야하지 않겠어?



전통의상을 입은 아이들이 그럴듯해 보이더라고.



나는 아야 소피아 성당 구역 안으로 들어가보았어.



아야 소피아 성당과 똑 같은 이름을 가진 건물이 터키의 이스탄불에도 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지.



2015년에 찍어둔 터키 이스탄불아야 소피아 사원이야. 터키가 러시아와 이집트, 심지어는 그들의 가상적국인 이란과 손을 잡고 중동에서 대형 사고를 칠 날이 언젠가는 반드시 올거야. 어쩌면 그게 세계 제 3차대전의 시작일지도 몰라.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나는 성당 건물을 향해 다가가보았어.



마침 주일이어서 미사를 드리는 중이었지.



우린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바깥 구역에서 조용히 예배를 지켜보았어.



그런 뒤에 마당으로 나간 거야.



무슨 기념일 같았어.



풍채가 훌륭한 신사들이 떼를 지어서 나오더라고.



사진사들과 텔레비전 카메라가 뒤따라 나왔어.



그날 낮에 벌써 이런 장면들이 텔레비전 뉴스로 나왔다고 해.



깃발을 들고 걸어가는 사나이의 신발과 무릎 장식을 살펴봐.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국회의사당을 지키는 근위병들의 차림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거야.


 

여기 테살로니키는 터키의 국부로 추앙받는 케말 파샤(=아타투르크)의 고향이기도 해.



세계 제 1차대전후 그리스는 테살로니키를 반드시 차지하고 싶어했고 그런 열망은 터키도 마찬가지였어.



개인적인 내 생각이지만 그때 그리스가 이스탄불을 수복하지 못한 것은 통탄스러운 일이야. 터키인들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겠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 한국인들이 만주를 수복하고 싶은 열망을 지닌 것을 두고 감히 꾸어서는 안될 헛꿈이며 개꿈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나는 아야 소피아 사원이 있는 광장을 벗어나서 걸었어.



시내 곳곳에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절의 유적들이 널려있었어.



마침내 갈레리우스 황제 개선문 앞에 이르렀어.



갈레리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황제가 통치했던 시기는 대략 서기 300년 전후 시기로 보면 틀리지 않아. 당시 로마제국은 황제가 서너명이나 되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어. 정제와 부제(부황제)가 다스리기도 하고 서로가 정제라고 칭하는 묘한 구조를 가지기도 했어. 그렇다면 권력투쟁에서 나오는 전쟁의 참화를 일반 백성들은 절대 피해갈 수 없었다는 말이 되는 거지.  



이런 혼란을 정리하고 권력을 잡은 사람이 역사에 유명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이지.



갈레리우스 황제는 한때 로마 제국의 동방을 다스리기도 했어. 그리스와 중동 일부와 지중해를 면하고 있는 아프리카 해안 반쪽을 다스렸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지.  



그가 통치할 때 만든 개선문이 남아있다는 말이야. 지금부터 약 1,700여년 전의 유적이 남아있는 거지.



갈레리우스 개선문을 훑어보고 난 뒤 바로 부근에 있는 로툰다 유적으로 갔어.



로툰다는 황제 영묘 혹은 이방신을 모시고 제사지냈던 신전이라고 보면 될 거야.



지금 우리 눈앞에 보이는 이 건물이 로툰다야. 4세기 초반의 건물에 무슨 미나렛(미나레트)이 붙어있느냐고 반문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역사에 비교적 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몇번 이야기한대로 나중에 그리스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토가 돼. 이슬람교를 숭상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절에 이 건물이 모스크로 사용된 적이 있어. 그것도 자그마치 1912년까지 말이야.



그러니 미나렛이 붙어있는 거지. 알고보면 그리스 역사도 기구한 편이야.



골목안에 다른 성당이 보이더라고.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리스는 동방정교 국가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 눈에 보이는 예배당은 거의 동방정교 건물이라고 보면 될 거야.



그런 것까지 다 보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았기에 그냥 패싱하기로 했어.



당시의 성벽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말았어.



부근에 대학 건물이 보였어.



대형 굴절버스가 지나가더라고.



무역센터 비슷한 시설물이 보이길래 가보았어.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