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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9 유럽-동남부:발칸반도 여러나라(完

알바니아 스쳐가기 1

by 깜쌤 2019. 10. 28.

2019년 5월 17일 아침이었어. 7시까지 잠을 자려고 노력했지만 5시 반에는 저절로 눈이 떠지더라고.



같은 방을 사용했던 ㄱ장로가 밖에 나가더니 토르티야 비슷하게 생긴 빵을 사왔어. 따뜻해서 먹기가 좋았어. 치즈가 많이 들어있어서 그런지 약간 새큼한 맛이 강했어.


 

요거트 한병과 같이 먹었더니 쉽게 넘어갔어.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셈이지. 


 

오늘은 몬테네그로를 떠나서 북() 마케도니아까지 갈 생각이야. 게스트하우스를 나와서 버스 터미널을 향해 걸었어. 이동 수단을 확정짓기 위해서였어.



터미널까지 걸어가며 이것저것을 생각했어. 아무래도 낮에 국경을 넘는게 좋을 것 같았어. 


 

여기에서 북 마케도니아 수도인 스코페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한번 뿐인데다가 밤 8시 경에 있으니까 다른 대안이 없는 거야.



알바니아를 거쳐 그리스 서부로 가면 좋겠지만 우리 목적지 가운데 하나인 테살로니키는 그리스 동부에 있기에 북 마케도니아를 거쳐서 가는 게 편한 거야. 이해를 위해 지도를 첨부할 게. 포털 다음에서 이 글을 컴퓨터로 볼 경우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확대되어 뜰 거야.






우린 현재 빨간색 풍선으로 표시된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에 머물고 있어. 오늘은 북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까지 가야하는데 가는 방법은 두 가지야. 하나는 코소보를 통과해서 가는 것이고 하나는 알바니아를 경유해서 가는 것이지. 코소보도 유엔(UN)에서 인정받은 나라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지?




그런데 코소보 북부는 아직도 정세가 불안하므로 접근하지 말라는 외무부의 경고문자가 계속 날아왔던 거야. 우리나라 정부에서 가지 말라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있기에 야간이동이 싫었던 거지. 버스가 어디를 경유해서 가는지를 정확하게 모르니 찝찝했기에 주간 이동을 하고 싶었던 거야.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는 택시 서비스 센터에 가서 물어보았더니 미니버스 요금으로 250유로를 달라는 거였어. 우리 일행이 다섯명이니 택시 한대에 다 탈 수가 없잖아.


몬테네그로의 포드고리차에서 북 마케도니아의 스코페로 가는 버스는 밤 8시 5분에 출발함. 하루에 한대 뿐이고 요금은 26유로였음.


 

버스 터미널 밖에 나가서 택시 운전수에게 직접 교섭해보았더니 한 대당 350 유로를 달라는 거야. 그렇다면 미니버스를 사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창구 직원에게 미니버스를 한 대 예약했어. 우리가 머물고 있는 7 Hills & Bike 호텔 앞에서 10시 30분에 운전기사와 만나기로 했어.



우리가 머물고 있는 호텔까지 픽업 서비스를 요구했더니 들어 주는 거야. 고맙더라고. 터미널에서 제공해준 차를 타고 호텔에 돌아와서 출발 준비를 했어. 다른 팀 멤버들은 식사를 하러 나갔기에 방에 사람이 안보이는 거야. 급하게 문자를 보내고 카톡으로 전화를 했어.



우리 팀 멤버들은 다시 모여서 짐을 정리했어. 10시 20분경에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왔어. 또 다시 장거리 이동을 해야하는 거지.



7 Hills & Bike 호텔은 이런 빌딩 속에 있었던 거야. 약속한 시간에 밴이 한대 오더라고.


 

밴을 타고 버스 터미널에 다시 갔어.



운전기사는 우리에게서 250 유로를 받아 터미널 안에 있는 사무소에 돈을 내고 돌아왔어. 그러니까 더 믿을 수 있었어. 혹시 우리와 같은 경우를 당한다면 공신력 있는 이런 사무소의 미니 버스나 밴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이제부터 이동을 시작하는 거지.



목표는 북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



우리가 탄 밴은 터미널을 빠져나갔어.



살다가 살다가 별별 경험을 다 해본다 싶었어.



차는 이내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어.



시가지가 크지 않았기에 이내 교외지역이 나오더라고.



교외에는 너른 포도밭이 펼쳐졌어. 멀리 보이는 산에는 눈이 묻어있는 것 같았어.



몬테네그로는 깨끗한 나라였어.



잠시 주유소에 들러서 기름을 넣었어. 이때까지만 해도 오늘 우리가 얼마나 먼 거리를 가야하는지 잘 몰랐던 거야.



교외에는 경작하지 않는 땅들이 너르게 펼쳐져 있었어.



습지들도 나타났어.



우리들이 탄 밴은 산비탈로 이어지는 길을 달리기 시작했어.



오른쪽으로 아름다운 호수가 펼쳐졌어.



슈코더르 호수였어. 몬테네그로와 알바니아가 공유하고 있는 호수지. 호수가 골짜기 속으로 파고 들어온 끝부분에 국경검문소가 있었어.



국경 통과는 너무 쉬웠어. 운전기사가 우리 여권을 거두어서 국경사무소 직원에게 넘겨주는게 다였어.



몬테네그로 출국을 끝냈으니 그다음은 알바니아 국경사무소로 가야지.



알바니아 입국도 아주 쉬웠어. 차에서 내릴 필요조차 없었으니까 말야. 마침내 알바니아에 들어온 거야.



 호수가 옆으로 따라오고 있었어. 내 평생에 알바니아에 오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어.



몬테네그로로 넘어가려고 대기중인 화물 트럭의 행렬이 꽤나 길었어.



알바니아쪽 휴게실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어.



운전기사 이름은 미스터 고란이라고 했어.



나는 미스터 고란이라는 이름보다 내가 지어준 별명인 미스터 붕케르로 기억하고 있어. 주유소 바로 옆 작은 언덕에 보이는 이 시설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위 사진에서 보았던 시설물은 전쟁대비용 벙커였어.



가만히 보니까 알바니아는 벙커 천지였어.



미스터 붕케르는 벙커나 나타날 때마다 '붕케르, 붕케르'라는 소리를 반복했어.



알바니아는 이슬람 국가야. 이런 나라에서 교회를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인데.....



우리가 잘 아는 마더 데레사(=테레사 수녀)가 바로 이 나라 출신이지.



우린 계속 슈코더르 호수 옆을 달리고 있었어.



호수가 보이지?



무슬림들은 알콜을 금기시해. 그러니까 이런 포도 농사를 짓는 분들이라면 어쩜 크리스찬들일지도 몰라.



 

붕케르(=벙커)가 나타났어. 사진 속에 보이는 저 벙커는 워낙 거대해서 지하에 나이트 클럽이 있다는 거야. 미스터 붕케르도 거길 한번 들어가보았다고 했어.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뒤부터 1990년까지 이어진 냉전 시대에 알바니아는 구 소련편을 들었어.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이었지. 



 

알바니아에서 장기 집권을 하며 국민을 세뇌시켜 독재정권을 유지했던 인물이 엔베르 호자였어. 엔베르 호자 (Enver Hoxha) 에 관한 위키백과의 글을 소개해 볼게.



제2차 세계 대전파시스트 이탈리아나치 독일에 맞서 알바니아 민족해방전선을 이끌었으며, 종전 뒤 사망(1985년)때까지 공산주의 정당알바니아 노동당총서기로 알바니아를 다스렸다.


그는 엄격한 스탈린주의에 의거하여 공산주의 국가 가운데도 유례없는 폐쇄 정치를 실시하여, 서방은 물론 구 소련·유고슬라비아·중국 등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도 차례차례 관계가 끊겨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소련에 대해서는 체코슬로바키아 · 헝가리 등지에 군을 투입하는 것을 보면서 국토 곳곳과 해안가에 전투벙커와 방공호를 설치하고 전 국민에게 무기를 지급하는 등, 적대시하였다. 1967년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무신론 국가를 선언하기도 하였다.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C%97%94%EB%B2%A0%EB%A5%B4_%ED%98%B8%EC%9E%90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진행 중이야.



현재의 알바니아는 유럽의 시리아 격에 해당하는 나라가 되었어.



지도자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었지. 현재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어떤 위치에 와있을까?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