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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9 유럽-동남부:발칸반도 여러나라(完

황궁에서

by 깜쌤 2019. 8. 27.

이제까지 황궁의 남쪽 입구 바깥 분위기를 살폈으니 안으로 들어가봐야하지 않겠어? 지난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한적이 있지만 아드리아해를 바라보고 있는 문은 구리문이라는 뜻의 동문이야. 맞은 편 북문은 금문(金門)이지. 동쪽문은 은문이고 서쪽문은 철문이라는 식으로 이름을 붙여두었어.


 

동문(동쪽문이 아니야. 구리문이지)으로 들어섰더니 마치 거대한 동굴입구를 지나 지하공간으로 들어가는듯한 느낌을 받았어. 통로 양쪽으로는 기념품 판매대들이 줄을 이었어.



중간 통로 좌우로도 넓게 길이 만들어져 있어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 사람들이 많았길래 인파를 피해가면서 셔터를 눌렀어.


 

이런 거대한 궁전을 만들려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재력을 가진 인물이어야 가능할거야. 물론 인력동원도 가능해야겠지. 기술력은 기본이고.... 


 

궁전을 만든 사람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야. 그는 서기 284년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 서기 305년에 황제자리를 놓아두고 자진해서 은퇴를 했지. 자진해서 로마제국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이 사람이 유일하지 싶은데 말야.



로마제정의 기틀을 놓은 사람은 누가 뭐래도 율리우스 카이사르야. 영어식으로 읽으면 줄리어스 시저이지. 카이사르라는 이름에서 카이저(독일 황제), 차르(러시아 황제)같은 낱말들이 만들어진거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3두정치를 시작한 사람이기도 하잖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유명한 4두정치 체제를 만들어내었던 사람이고.....



이제 지상으로 올라가야지. 지상에서 들어가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기묘한 구조이지. 그러니까 설계가 묘하게 되어있다는 말이기도해.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면 아담한 규모를 지닌 광장이 등장하고 오른편에 성 도미니우스 성당과 종탑이 나타나지. 성당 맞은편에는 제우스 신전이 있어. 우리가 성당입구에 도착했을땐 저녁 5시가 넘어버려서 입장이 불가능했어.


 

광장바닥은 대리석으로 깔려있어. 황궁안의 모든 골목은 대리석이라고 보면 돼. 그러니까 속된 말로 사방이 삐까번쩍하고 부티가 넘쳐나는 곳이라고 보면 되지. 나같은 빈티 넘치는 사람이 부티나는 거리를 돌아다닌다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니겠어?


 

여길 다녀간 한국인들이 제법 많을텐데 내가 이런 식으로 소개하는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


 

기독교도 입장에서 보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적그리스도와 같은 레벨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어. 로마제국 최후의 공권력에 의한 극심한 기독교 탄압이 그로 인해 이루어졌으니까 말야. 작은 광장에는 사람들로 넘쳐났어.


여기 보이는 성당들은 후대에 채워진 것들이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만들 당시에는 이런 성당이 없었어.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황제 자신이 기독교도와 기독교를 지극히 싫어했는데 예배당을 만들도록 허락했겠어?



참으로 기묘한 일은 그의 사후 백여년뒤부터 그가 만든 이 황궁안 이방신전터에 예배당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는거야. 그의 뒤를 이은 황제가 너무나 유명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이고 그가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한 황제가 되었어. 서기 313년 6월 15일의 일이지.  


성당 입구 계단에 방석이 놓여있는게 보이지? 관광객들 편의를 위해서 놓아둔게 아니야. 맞은편 커피숍에서 장삿속으로 깔아둔 것이지. 여기 이 광장에는 로마병사 차림을 한 두 사람이 있어서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주어야하는게 상식이지.


 

오후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광장에 그늘이 들었어. 그늘이 져있으니까 구경하기에는 오히려 더 편했어.



지금 우리가 서성거리는 이 공간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은퇴후에 살기 위해 황제 재임중에 만들도록 지시해두었던거야. 왜 하필 여기였을까?



황제가 되기 전에 그는 디오클레스라는 평범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어. 고향은 스플리트 부근의 살로나였어. 스플리트는 당시에 스팔라툼이라고 불렸던 작은 마을이었지. 르네상스 시대에 베네치아인들이 거주하면서 스팔라토라고 불렀다가 지금은 슬라브식으로 소리를 내어 스플리트가 된거야.


이 유적이 있는 크로아티아가 예전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의 일부분이었잖아. 나라 이름에서도 힌트가 있듯이 주민들의 대부분은 슬라브인들이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아버지 이름조차 역사에 남아있지 않는 것을 보면 그는 평민출신이었을거야. 어떤 이들은 해방노예의 후손이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해. 



근본은 천했지만 출세는 군대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거야. 왜냐하면 황제가 되기 바로 직전 직급이 황제 경호대장이라는 신분이었으니까 말야.



은문으로 통하는 길을 걷다가 다시 돌아섰어.



우린 다시 처음에 보았던 광장으로 돌아온거야.



철문, 그러니까 서문쪽으로 걸어보았어. 저 골목 앞에 보이는 문이 철문이야. 골목이 상당히 좁지?



보면 볼수록 여긴 신기한 곳이야. 철문을 나가 골목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나로드니 광장까지 가버렸어. 그건 궁전터 밖으로 나갔다는 말이되는거야. 그렇다면 다시 돌아서야지뭐.



우린 지금 세계를 휘젓던 로마제국의 황제가 살았던 궁전 공간을 돌아다니는 중이지. 기막힌 사실은 황궁 안에 현지인이 가득 산다는거야. 어떤 이들의 말에 의하면 황궁터 안에 사는 사람들 숫자가 삼천여명 정도 된다고해. 



황궁 건물을 이용하기도 하고 새로 짓기도 해서 가게로도 쓰고 주거용 주택으로, 심지어는 호텔로도 쓴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해.



지구위에 현존하는 황궁이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 곳은 아마 여기밖에 없을걸.




골목은 좁았고 벽은 높았어.




이런 문을 보면 이 안쪽이 요새가 아니고 뭐겠어?



난공불락이라는 말이 생각나. 어때?  입이 떡 벌어질 정도지?



부근 빵집에서 저녁을 먹기로했어. 벌써 6시가 다되어가는거야. 그래서 롤드 피자(Rolled Pizza)를 샀어.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동그랗게 말아둔 피자라고 해야할까? 맛있더라고. 가격은 30쿠나였으니 우리돈으로 치자면 5,400원 정도였지.



피자 위 유리칸 안에 만들어둔 롤드 피자가 보이지? 거리가 보이는 창가 좌석에 앉아 피자를 먹었어.



근사한 장소에서 멋진 저녁식사를 해야하지만 돈이 넉넉하지 못하니 아껴야만 했어.



우리팀 멤버들에게 문자연락을 해서 함께 모여 커피를 마시기로 했어. 커피 5잔에 66쿠나였어. 우리돈 12,000원 정도로 다섯잔을 마셨으니 괜찮은 가격이었지.



여행 출발전 커피 마실 돈을 기부해주신 분이 계셔서 그 분 이름으로 대접을 해드린거야. 



커피를 마신 뒤엔 다시 골목길을 걸었어.



골목을 걸어 아드리아해가 보이는 바닷가로 나가보기로 한거야.



그런데말야, 골목이 왜 이렇게 예쁜거야?



골목이 말야, 이렇게 예쁘고 우아해도 되는거야?




지나가다가 수퍼마켓 안을 보았어. 실내가 안온해보였어.



우린 다시 해변으로 나온거야. 페리보트 선착장 부근이지.



이국적인 풍경이지? 스플리트만해도 기후가 온화해서 겨울에도 제법 따뜻하다고해.



섬으로 떠나는 배들이 정박해있었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여기에서 이탈리아의 안코나로 갈 수 있다는거야.




멀리 페리보트가 보이더라고.



스플리트 근교의 가까운 섬으로 떠나고 싶다면 이 부근에서 교섭을 해보는것도 괜찮을거야. 해가 기울고 있었어. 벌써 저녁때가 되면 어떡하겠다는거지?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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