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9 유럽-동남부:발칸반도 여러나라(完

국회의사당

by 깜쌤 2019. 7. 10.


카페를 나와서는 골목 뒤쪽으로 성 이슈트반 대성당을 남겨두었어. 떼어갈 수는 없잖아?



강변으로 이어지는 골목에는 오늘도 어제처럼 사람들이 바글거렸어.



강변까지는 가까워. 오버코트를 옆에 던져두고 사색에 잠긴 젊은이가 보이지?



이 청동인간은 도나우강을 바라보며 뭘 생각하는 걸까? 나도 옆에 함께 앉으려다가 참았어. 어느 누구의 카메라 속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서 이런 블로그에 올라갈까봐 말야.



강변쪽 광장에서 국회의사당 옆면을 바라보았어.



청동인간은 젊은이가 아니었어. 그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슬픔과 비애가 묻어났어. 무슨 일이 그에게 일어났던걸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분들은 비애니 슬픔이니 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셨을까?



왜 난 아직도 젊은듯 세월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일까?


 

나는 광장 모퉁이를 돌아갔어.



그랬더니 웅장한 건물 자태가 모습을 드러내는거야.



국회의사당 건물 전면에는 너른 잔디광장과 포장된 광장이 펼쳐져 있었어.



그리고 또다른 인물이 말을 탄채 턱 버티고 서있었던거야.



나는 이 아가씨를 보는 순간 숨이 막히는듯한 느낌을 받았어. 대단한 미인이었어. 적어도 내눈에는 그렇게 비쳤던거야.



그녀의 얼굴에서 젊었던 날의 아내 모습을 조금 읽을 수 있었어. 아내가 미인이라는 말은 절대 아냐. 내가 그 정도로 능력있는 남자가 아니란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입을 삐죽거려가며 두고두고 비웃을테지. 그녀는 1956년의 비극을 상징하는 기념물 앞에 서 있었어.



1956년은 헝가리 역사에서 비극적인 한해였어.



소련의 강압적인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대학생들과 의식있는 시민들이 봉기했던 해였거든. 소련이라는 나라를 요즘 젊은이들은 어찌 알까?



전시장은 지하에 마련된 것 같았는데 굳이 밑으로 내려가보지 않았어. 지금은 그때의 내 결정을 후회하고 있어.



소련의 압제에 저항하여 일어선 시민군들은 소련군의 철수와 언론의 자유, 복수정당제에 의한 자유로운 선거, 사상의 자유등을 요구했었어.



총탄 자국이 보이지? 헝가리인들의 봉기에 놀란 소련 수상 니키타 후르시초프는 탱크 일천대와 소련군 병사 15만명을 동원해 헝가리를 침공했던거지. 그게 1956년 11월 4일이었다고해. 시민봉기는 그해 10월에 있었지.



헝가리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어? 헝가리 시민쪽에서만도 수천명의 사망자가 났어. 무시무시한 숙청이 그 뒤을 이었지.



소련의 위성국 가운데 가장 먼저 자유화를 부르짖고 나온 사람들이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 사람들이었어.



삼십여년의 세월이 더 흐른 뒤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보고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헝가리 국민들이었어. 그들은 자본주의 국가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쇼크를 받은거야.



그때까지 특정국가의 일방적인 선전술에 넘어가 철저하게 속고 살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던 헝가리 사람들은 체제변화 흐름에 과감하게 동참했어.



그들은 먼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 설치되어있던 철조망을 걷어냈지.



결과는 동독 관광객들의 헝가리 대량 유입이었어.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서 가장 국민소득이 높다고 자부하던 동독인들이 러시아제 고물 라다 승용차를 타고 헝가리로 몰려간거야. 왜 그랬을까?



헝가리 여행 핑계를 대고 헝가리까지 넘어온 동독 사람들은 철조망이 제거된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비엔나에 있는 서독 대사관으로 몰려간거야.



그리고는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거지.



독일대사관에서는 동독사람들의 정치적 망명을 수용하고, 오스트리아의 협조를 얻어 망명을 신청했던 사람들을 특별열차편으로 독일로 실어날랐어. 오스트리아가 독일어를 사용하는 독일혈통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그 악명높은 히틀러가 바로 오스트리아 사람인데 독일에서 정치인으로 입지를 굳혔던 것은 다 그런 이유가 있는 일이지.



동독인들의 대량 망명이 서독 텔레비젼에 저녁 뉴스로 방송을 타자 서독방송을 보았던 동독 사람들은 너도나도 헝가리로 몰려간거지.



그러니 일이 기폭제가 되어 결과적으로 동독이 무너지고 독일 통일이 이루어진거야.



동독만 무너진게 아냐. 연쇄반응으로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정권들이 줄줄이 무너져내린거지. 나중에는 소련마져 무너져내렸어. 결국 소련이라는 나라가 역사에서 사라져버린거고..... 헝가리 국회의사당 광장 맞은편으로 트램이 지나가지.



서울올림픽의 역사적 의의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은데 나는 그런게 너무 아쉬워.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지만 뻔한 사실까지 굳이 외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비극이자 희극이지.




일부 서양 역사학자들에게 창조적인 천재로 평가받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의 말대로 '인간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지. 나는 지금 역사의 현장에 와 있는거야.



헝가리 국회의사당 구경을 하려면 미리 신청을 해야한다고 들었어. 국회의사당 관람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광장옆 지하공간인 방문자 센터에 모이는것 같더라고. 나도 지하로 내려갔어.



국회의사당을 보려는 것이 아니야. 민생고를 해결하는게 급선무였거든.




지하 식당 매점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샀어. 1,000 포린트였으니까 우리돈으로는 4천원이야. 약간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장소가 국회의사당내 Visitor's Center잖아.




샌드위치를 받아들고는 식당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어.




받침 접시 밑바닥에 깔아준 종이에는 헝가리 국회의사당에 관한 설명이 영어로 상세하게 쓰여져 있었어. 이 여행기속에 그 내용을 번역하여 소개하려다가 말았어. 내 알량한 영어실력으로 뭐나 되는듯이 잘난척 번역하는게 우습잖아.



서바이벌 잉글리시 나부랭이로 간신히 버티는 주제에 말야.



광장 군데군데 멋진 조형물들이 배치되어 있었어.



 나는 다시 다뉴브 강가로 나간거야.




건너편에 왕궁과 어부의 성과 마차시 대성당이 보였어.



강변으로 따라난 길을 걸었어.



제법 그럴듯 하지?



나는 인도와 자전거도로를 겸한 이런 길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



강변에 늘어선 건물들이 하나같이 아름다웠어. 그러니까 부다페스트지.







어리

버리







'배낭여행기 > 19 유럽-동남부:발칸반도 여러나라(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헝가리를 떠나다  (0) 2019.07.13
섬에서  (0) 2019.07.11
페리헤기  (0) 2019.07.06
다시 헝가리  (0) 2019.07.05
슬로바키아   (0) 2019.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