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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8 일본 자전거 여행-간사이(完)

오사카성에서 그 인간 만나기 2

by 깜쌤 2019. 3. 28.


조선 정벌을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로 토요토미 히데요시 말고도 더 있다.



근대에 들어서는 메이지유신을 주창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정한론선구자(?)일 것이다. 그 인간이  감옥에서 쓴 유수록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고 전한다.



 

요시다 쇼인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 우리가 잘 아는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다. 



그 외에도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던 키도 다카요시(木戶孝允) 있고, 총리 자리까지 이른 야마가타 신사쿠(山形有朋),  우리에게 을사조약을 통해 경술국치의 치욕을 안겨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같은 자들은 모두 요시다의 제자에 해당한다. 



일본 근대화의 스승격으로 대접받는 후쿠자와 유키치도 그 중의 한명이다.



내가 언급한 이런 인물들은, 참으로 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모두들 일본에서는 존경의 대상이 된다.



우리가 지금 보는 오사카 성은 나중에 토요토미 가문 흔적 지우기에 나섰던 도쿠가와 집안에서 새로 쌓은 것이다.



토요토미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한 것은 어찌보면 역사의 정당한 귀결일 것이다.



침력전쟁을 통해 피해를 끼친 이웃 국가들에게 사과할 줄 모르고 오히려 갈등만을 불러일으키는 일본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내가 섣불리 나서서 이러니저러니 말할 처지가 아니다. 그런 일은 역사를 주관하는 절대자에게 맡겨드리자.



다만,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설욕을 해야한다는 점만은 강조해두고 싶다. 원수를 원수로 갚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본때는 반드시 보여주어야 하리라.



나도 한때는 일본과의 관계가 선한 동반자적인 이웃이 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독도까지 넘보는 것을 보고 그런 꿈을 깨끗하게 접었다.



일본은 근대사에서 오키나와를 가져갔고 홋카이도를 자기들 영토로 삼았다.



영토확장 욕심에 사로잡힌 그들은 마침내 독도조차 자기들 것이라고 우기는 야욕을 드러냈다.


 

왜인들을 다루는 법은 오직 한가지, 실력을 길러 본때를 보이는 것뿐이다.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비겁하고 약한 자에게 잔인할 정도로 강한 것이 섬나라 사람들의 본성이다.



그런 자들에게 정의감이라는게 존재할까?



중국도 다를바 없다는게 내 생각이다.



경제적인 이익, 돈이 걸린 문제라면 그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신의까지도 헌신짝처럼 내팽겨치는게 중국이라는 걸 수없이 느꼈다.



쓸모없는 헌신발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마는 헌신발이라고 해서 가차없이 버리며 패대기치는게 능사는 아니다.



헌신발이라고는 하지만 조금전까지도 나의 소중한 발을 보호해주던 귀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오사카성을 나서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떤 길일까 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것이다.



오사카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문어석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오사카성에서 그 인간들을 다시 만난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성문 맞은편에 히데요시가 보인다.



히데요시의 꿈은 여기 오사카성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2대를 못넘긴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출가했던 히데요시의 정실, 네네는 천수를 누렸다.



저녁을 먹기 위해 시내를 걸어가다가 도난 방지를 겸한 자전거 거치대를 마주쳤다.



저녁은 항상 하던대로 덮밥을 먹지 않고 중국집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싼값으로 배부르게 먹으려면 중국집이 최고다. 일본 회사원들의 회식이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돼지고기 삼겹살 비슷한 것이 나오는 정식을 먹었다. 



780엔이다. 그런대로 맛있게 먹었다.



호텔에 돌아와서는 씻고 일기를 썼다. ㄱ사장이 호텔 1층에서 세탁기를 돌린 후 탈수까지 해왔다. 그분이 이번 여행의 최고보배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