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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8 베트남-월남의 달밤 2(完)

호치민 - 대통령궁 1

by 깜쌤 2019. 1. 10.


눈에 익숙한 로고를 단 버스가 길가에 서있었다.



단체관광객을 싣고 온 모양이다.



엄청나게 키가 큰 가로수가 줄지어 선 길을 따라 걸었다.



이 정도로 큰 나무들이 정글에 가득하다면 엄청난 돈이 될 것이다.



열대의 장점은 식물이 자라기에 너무 좋은 환경을 가졌다는 것이다.



통일궁이 이 부근일 것 같은데....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목적지는 한때는 독립궁이라고 불렸던 통일궁이다.



한때 독립궁은 베트남 대통령궁으로 사용되었다. 이 부근 어디엔가 있어야하는데....



군인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의 다 온듯 하다.



통일궁으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교통체증이 심했다.



통일궁으로 향하는 여행객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매표소가 나타났다.



입장료는 4만동이었다.



경내에 들어섰더니 철거중인 행사 잔해물들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눈에 거슬린다.



거창한 행사가 진행되었던 모양이다.



현관이 다가왔다. 경사로를 따라 관람을 마친 관광객들이 나오고 있었다.



근대에 프랑스인들이 베트남을 지배한 적이 있었다.


 

유럽인들은 베트남 남부의 메콩감 삼각주들이 늘어선 지역을 코친차이나(Cochinchina)라고 불렀다.



그 코친차이나를 다스리는 프랑스 총독이 저택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 1866년의 일이다.



총독관저를 조금씩 확장한 뒤에는 노로돔궁이라고 이름 붙였다.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나고 한참 뒤 프랑스 세력이 베트남에서 물러난 후에는 남부베트남 대통령이었던 응오딘지엠이 관저로  활용했단다.



사진 속에 옛날 모습이 드러나있다.



건물 구조는 길할 길()자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건물에 얽힌 역사는 길하지 못한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1층에는 회의실이 많았다.



창문을 통해 뒷마당을 살펴보았다.



두터운 카펫이 깔린 실내구조가 프랑스의 궁전을 연상시킨다.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과 베트콩 군대가 이 건물을 점령했다. 


 

마지막 권력자는 즈엉반민 장군이었다.



즈엉반민과 임시내각관료들이 이 건물 안에서 점령군의 진입을 지켜보았다고 전한다.


 

역사의 현장이다. 부정과 부패와 독재로 찌든 베트남정권은 그렇게 몰락해갔다.



베트남인들은 오랜 투쟁끝에 프랑스와 미국을 몰아낸 사람들이다.



뒷마당에 찻집이 보인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어느 정도의 뿌리를 내렸을까?



둘러보는 내내 착잡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는 베트남 패망의 순간을 지켜본 세대였기에.....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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